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 신도석 남쪽 통로 스테인드글라스의 천사들 사이에 한 남자의 상이 끼여 있다. YMCA 설립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 1821.10.11~1905.11.6)의 청년기와 노년기 모습을 나란히 담은, 1921년 11월 작품이다. 구약 산상수훈을 모범적으로 구현했다는 종교적 의미도 있지만, 1차 대전 그의 YMCA가 유럽 전장에서 청년들에게 기여한 바에 대한 세속 국가의 기림의 의미가 더 컸다.
YMCA는 유럽 전선 여러 곳에 통나무 움막을 지어 병사들의 휴식과 운동, 사교활동을 도왔고, 고향 친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집배신했다. 1차 대전 숲 속 YMCA 움막 포스터에는 ‘오, 내 사랑 나의 집, 우리 각자의 집이고, 우리 모두의 집’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조지 윌리엄스는 잉글랜드 서머싯의 덜버튼이란 곳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영국 국교회를 믿는 집안이었지만 그는 훗날 스스로 밝힌 바 “산만하고 사려 깊지 못하고 신앙심도 없는 청년”이었다고 한다. 16세 되던 1837년 이웃 도시 브리지워터의 한 포목상 견습사원으로 취업했고, 41년 런던으로 옮겨 44년 가게 매니저 겸 주인의 사위가 됐다.
그 사이 그는 회중주의 교파(Congregationalism)로 개종, 복음 선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한다. 그가 신도 및 포목상 업주들과 마음을 모아 YMCA를 설립한 것도 44년 그해였다. 산업혁명기 고단한 삶과 처지에 낙담한 청년들이 악에 빠져들지 않고 신앙을 매개로 모여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가장 좋은 게 여가 활동을 주선하는 거였다. 운동을 통한 금욕과 희생, 규율의 복음이라는 ‘근육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 운동이 대표적인 예였다.
YMCA는 불과 10년 사이 교회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가히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1차 대전을 거치며 청년 복음 선교의 대명사가 됐다. 한국 YMCA 역사는 1896년 배재학당에 조직된 ‘협성회’란 단체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YMCA는 일제 강점기 근대화ㆍ독립운동과 광복 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한 축으로, 한국 역사에 기여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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