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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커녕 ‘셀프 수렁’에 빠진 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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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커녕 ‘셀프 수렁’에 빠진 한국당

입력
2019.11.0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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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사태 이후 ‘제 밥그릇 챙기기’ 몰두… ‘패트 가산점’ 등 빈축 

 거물들은 줄줄이 “영남 출마”… 지지율 민주당에 17%P차로 벌어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1차 영입인재 환영식'에서 참석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사태를 겪으며 여권에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할 수는 없지 않나.”

최근 중도층은 물론이고 보수성향의 유권자조차 입버릇처럼 하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쳐 지난해 6ㆍ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하고도 쇄신하지 않고 기득권에 갇혀 있는 한국당에 대한 불신은 여론조사 수치로도 확인된다. 1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지난달 29∼31일 전국 만 19세 이상 1,000명 대상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에서 더불어민주당 40%, 한국당 23%로 양당 간 격차가 조국 사태 이전으로 돌아갔다. 한때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9%포인트로 좁혀지는가 싶더니, 반짝 지지율 상승에 그친 것은 그만큼 한국당의 기초 체력이 부실하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당은 기득권 챙기기에만 골몰하면서 쇄신의 적기(適期)를 놓치고 있다.

한국당이 조국 사태 이후 보여준 행보는 변화나 혁신이 아닌 ‘제 밥 그릇 챙기기’였다. 민주당 이철희, 표창원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물갈이 이슈’를 선점하던 때,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가산점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사태로 고발 당한 의원 60명에게 공천 가산점을 준다는 것은 정치 신인이나 원외 인사들에겐 ‘현역 의원 기득권 챙기기’나 마찬가지다. 한국당 관계자는 “경선은 현역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물갈이가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설상가상 지난해 지방선거 참패 이후 직간접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ㆍ김정훈ㆍ유민봉ㆍ정종섭ㆍ윤상직ㆍ조훈현 의원 중 일부가 당 사무처에 ‘불출마를 번복하는 입장문’을 팩스로 보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주요 이슈별 정당 지지율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주요 이슈별 정당 지지율 추이. 그래픽=김문중 기자

홍준표 전 대표, 김태호 전 경남지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등 인지도가 높은 거물들의 ‘내년 총선 영남 출마’ 뉴스가 본격적으로 나오던 시점도 이때였다. 홍 전 대표는 경남 밀양ㆍ의령ㆍ함안ㆍ창녕을, 김 전 지사는 경남 산청ㆍ함양ㆍ거창ㆍ합천, 김 전 위원장은 대구 수성갑 도전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들 지역은 한국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보수 텃밭인 데다 대구 수성갑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당 의원이 현역으로 있어, ‘지역구 탈환’의 의미도 없다. 수도권 험지에 출마해 희생하기보다는 여의도에 무사 귀환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민주당의 경우 19대 총선 당시 전북에서 3선을 했던 정세균 의원이 서울 종로로 지역구를 바꾸는 승부수를 띄운 뒤 내리 당선되고, 20대 총선에선 경기 군포 3선 의원이었던 김부겸 의원이 험지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중진 역할론’을 실천에 옮긴 것과 대비된다.

최근 급부상한 ‘나경원 원내대표 교체설’도 기득권 챙기기로 볼 여지가 있다. 나 원내대표의 임기는 올 12월 중순까지지만 ‘국회의원의 잔여 임기가 6개월 이내인 때에는 의원총회의 결정에 의해 임기를 연장할 수 있다’는 당헌ㆍ당규에 따라 재추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럼에도 안팎에서 교체설이 나도는 것은 표면적으론 나 원내대표 리더십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지만 속내는 물갈이론에 취약한 일부 중진들이 총선 공천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원내대표 출마 의사를 밝힌 4선 유기준(부산 서ㆍ동), 3선 강석호(경북 영양ㆍ영덕ㆍ봉화ㆍ울진), 3선 안상수(인천 중ㆍ동ㆍ강화ㆍ옹진) 의원의 지역구는 모두 한국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쇄신보다는 현역들의 기득권 챙기기가 주를 이룬 가운데 그나마 1차 영입 인사마저 보류 소동이 일면서 한국당이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전혀 주지 못했다. ‘공관병 갑질’ 논란이 있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발표 전날 보류되고, 청년 분야 인사로 영입된 백경훈 ‘청년이 여는 미래’ 대표가 지방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신보라 의원 비서의 남편으로 확인되는 등 영입인사의 면면도 참신성이 떨어졌다. 한국당 관계자는 “인재영입 과정에서도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려다 보니 명단이 (최고위 보고 전에) 사전에 유출되고, 최고위원 패싱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당의 꼴만 우스워졌다”고 말했다.

결국 적극적인 쇄신 의지와 보수통합이라는 큰 그림 없이 당을 운영하면서 한국당이 재건의 모멘텀을 또다시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민 경희대 객원교수는 “영입된 인사가 총선 혹은 당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인재영입의 핵심”이라며 “조국 사태를 계기로 내부 혁신을 다지고 보수통합을 꾀한 이후 인재를 영입하는 게 순서인데 성급히 인재를 영입하다 보니 상황이 꼬였다”고 말했다.

같은 비판은 내부에서도 분출하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3일 페이스북에서 “친박이 친황(친황교안)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박근혜 때 하던 주류 행세를 다시 하고, 비박은 뭉칠 곳이 없어 눈치나 보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돼 버렸다”고 질타했다. 홍 전 대표는 이어 “양 진영에 몸담지 않으면 공천이 보장되지 않으니, 모두가 레밍(Lemming·들쥐의 일종)처럼 어느 한쪽 진영에 가담해서 무조건 맹목적으로 수장을 따라가는 ‘무뇌정치’ 시대가 된 것”이라며 “이런 레밍정치ㆍ계파정치를 타파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표 달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문제는 황교안 대표는 물론이고 그 주변을 둘러싼 관료 출신 초선 인사 중에 정치와 선거, 전략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라며 “한국당이 ‘자유 우파’라는 이념적이고 폐쇄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인재영입에도 실패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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