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역 설치율 약 36%
“휴대폰도 급하면 편의점에서 충전하잖아요. 장애인의 발인 전동휠체어도 그런 거에요. 돌아다니다 언제든 충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뇌병변장애로 11년째 전동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배재현(40)씨는 전선과 어댑터로 이뤄진 휠체어 일반충전기를 항상 갖고 다닌다. 이걸로 배터리를 완전 충전하는데 10시간이 걸리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휠체어 시동이 꺼지는 끔찍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감내하고 있는 불편이다.
약 10년 전 2시간이면 완전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가 서울 지하철역에 설치된다는 소식에 배씨는 누구보다 기뻐했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다. 설치된 역 자체가 적고 설사 있다 해도 사용자 편의를 고려했다고 보기 어려운 역들이 대부분인 탓이다.
배씨는 지난달 23일 서울지하철 4호선 쌍문역 수유역 노원역을 직접 다니며 급속충전기 설치 실태를 본보에 설명했다. 수유역은 충전기가 역사 점포 벽 바로 옆에 붙어있어 앞을 지날 때까지 발견할 수 없었고 사용도 불가능했다. ‘전력 안전공급을 위해 공사 중’이란 문구가 붙어있었다.
수유역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노원역 사정도 다를 게 없었다. 역 안내도엔 급속충전기 위치가 표시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의 휴대폰용 앱 ‘또타지하철’에 접속해 ‘교통약자’ 버튼을 누르자 ‘지하 1층 4번 출구 하단계단 옆’이란 안내가 떴다. 4호선이 아닌 7호선 출구다. 배씨는 “코레일에는 충전기 위치를 알려주는 공지나 홍보물이 없어 지하철로 이동하다 급하게 충전이 필요할 경우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할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배씨는 10분 넘게 이동해 7호선 노원역 충전기를 찾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충전선 길이가 짧았고 단자 연결 부분이 뻑뻑해 한동안 애를 먹었다. 주변엔 역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호출 버튼이 없었다.
그나마 배씨가 안내한 역들에는 급속충전기가 존재는 했다. 지금도 없는 역이 3분의 2나 된다. 서울교통공사와 코레일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1~8호선 역사 내 설치율은 약 36%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가 필요한 국민은 23만명에 이른다.
급속충전기 설치가 강제 사항은 아니다. 별도 규정이 없어 서울에선 각 구청들이 서울교통공사나 코레일에 협조요청을 해 설치를 한다. 이러다 보니 설치율은 낮고 지역별 편차가 크다. 도봉구는 관내 모든 지하철역에 설치한 반면 금천ㆍ양천ㆍ관악ㆍ중구는 설치율이 제로(0)다. 양천구청 관계자는 “다른 사업에 밀려 늦어졌다”고 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역에 문의했으나 장소 선정 및 관리 차원에서 협조가 힘들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답했다.
설치 필요성을 공감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코레일 관계자는 “대부분 집에서 충전을 해 이용률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하지만 보편적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송병섭 대구대 재활공학과 교수는 “장애인들이 언제든 충전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 의무설치는 물론 인센티브 등을 통해 민간시설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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