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제2 출발점’에 서다] ‘좋은 의도, 나쁜 결과’ 정책들
최저임금 2년간 29% 올렸지만 상ㆍ하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심화
“제로화”하겠다던 비정규직도 올해 87만명↑ 되레 크게 늘어
“경제가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일자리를 챙기겠습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일자리였다. ‘1호 업무 지시’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주문한 것은 상징적이었다.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세 축을 바탕으로 한 ‘제이노믹스’가 경제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임기 전반기를 보낸 지금, 각종 경제지표는 출범 당시의 기대와는 반대로 가고 있다. ‘좋은 의도’의 정책이 현실에선 ‘나쁜 결과’를 낳고 있는 사례가 많다.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복지 확대 등은 모두 우리 경제가 가야 할 방향이지만 최근엔 오히려 원성의 대상이 되고 있다.
3일 한국일보의 설문에 “전반기 경제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경직됐다는 것”(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소득주도성장에 나선 의도는 좋았지만 경제팀이 너무 무지했다”(우석진 명지대 교수) 등의 지적이 나오는 건 이상적인 정책이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년 새 최저임금 30% 인상… “정책이 성장 눌렀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는 갈수록 성장의 과실이 기업에 집중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안이었다. 가계소득을 높일 방법으로, 2020년 혹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을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건 문재인 후보만이 아니었다.
문제는 경제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공약 달성에 급급했던 급격한 인상 정책이었다. 2018년 최저임금은 2017년보다 16.4%(1,060원) 오른 7,530원으로 2001년(16.6%) 이후 가장 인상폭이 컸다. 올해 최저임금은 다시 10.9%(820원)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됐다. 그러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5월 “2년간 최저임금이 29% 오른 영향으로 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 증가가 둔화했다”며 인상 폭 완화를 권고하기도 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낮은 원가를 경쟁력으로 삼는 제조업, 자영업자가 많은 경제구조에서는 정책의 순서가 ‘경제구조 개혁-최저임금 인상’ 순이었어야 했는데, 거꾸로 갔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는 “가라앉는 경제에 망치질(최저임금 인상)을 하면서, 문 정부가 얼마나 현장을 도외시한 정책을 썼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분배 개선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2017년 2분기 4.73배였던 ‘5분위 배율(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은 2018년 2분기 5.23배, 올해 2분기엔 5.30배까지 벌어졌다.
물론 정책의 성과를 논하려면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인 근로장려세제, 실업부조 등 재정 정책이 병행된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중장기적 효과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도 “영세 사업장 노동자 소득은 많이 나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하강기 근로시간 단축… “속도조절 필요”
최근 통계청은 한국 경제의 최근 경기 정점을 2017년 9월로 공식 진단했다. 문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 남짓 지난 시점부터 경제는 하향세였다는 의미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노동자들의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제도의 취지였다.
그러나 제조업, 건설업 경기가 둔화되면서 근로시간 단축에 뒤따르는 일자리 창출 효과는 없었다. 올 9월 기준 제조업, 건설업 취업자(약 642만명)는 52시간제 시행 전인 2017년 말(666만명)보다 23만명 이상 줄었다. 중소기업계는 내년부터 50~300인 기업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며 보완이나 시행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의견을 같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 개선은 미지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산업 경쟁력 약화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산업의 재배치를 비롯한 전환이 필요한데, 이를 막는 중요한 걸림돌이 노동을 비롯한 요소시장의 경직성”이라며 “노동시장에 직접 개입했던 정책을 비롯해 부작용을 낳고 있는 정책을 보다 시장 원칙에 입각한 방향으로 궤도 수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철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여야간 이견이 없는 민생 법안인데도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고 잠자고 있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되려 늘어난 비정규직
양질의 일자리를 최대로 늘리겠다는 문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비정규직 제로화’라는 모토로 추진됐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취업자 수가 증가하면서 상용직 근로자 비중이 69.5%로 최고치를 기록하고 고용보험 가입자도 50만명 이상 늘어 일자리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이 되레 늘어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올해 8월 기준 정규직 근로자 수는 약 1,308만명으로 전년 대비 35만명 줄어든 반면, 비정규직은 748만명으로 지난해보다 87만명 증가했다.
1년 이상 근무하면 상용근로자로 분류되지만, 결국 1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이 무기계약직ㆍ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그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급증했다는 얘기다. 그 배경으로,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정부 측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작 훨씬 규모가 큰 민간 부분은 움직이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정 고민 없는 복지 확대… “공공 비대화만 부를 뿐”
정부는 확장재정으로 최근 경기침체의 돌파구를 찾고 있다. 실제 가장 필요하고, 쉽게 확대할 수 있는 분야는 복지였다. 2020년 예산안에서 보건ㆍ복지ㆍ노동분야 예산은 올해보다 20조6,000억원(12.8%) 늘린 181조6,000억원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복지지출 등 의무지출은 재정에 독이 될 수 있다. 정부 계획을 보면 2023년까지 의무지출은 약 303조원으로 올해(239조원)보다 64조원(연 평균 6.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3년 의무지출 비중은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50.1%)이다. 권영준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는 “복지 국가로의 전환이 절실한 것은 맞지만 현재의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재정지출만 늘릴 경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결과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문 정부는 임기 동안 17만4,000명에 이르는 공무원을 채용하기로 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복지 재정의 집행 영역을 늘리다 보면 결국 공무원을 뽑을 수 밖에 없다”며 “이미 우리 정부는 너무 크다”고 꼬집었다.
※ 오는 9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 2년6개월을 맞는다. 2017년 5월 탄핵정국 속 촛불혁명에 힘입어 ‘공정과 정의’를 기치로 출범한 문 정부는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 노력을 펼쳤지만, 대개는 여전히 미완인데다 성공이 요원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 문 정부 들어 각종 경제지표가 고꾸라졌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평시로는 처음 2%가 위태롭고, “제로(0)화 하겠다”던 비정규직은 1년 새 86만명 넘게 더 늘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통일 한국, 검찰 개혁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 비아냥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한국갤럽의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는 긍정(44%)보다 부정(47%)이 많았다. 특히 부정 평가의 이유 가운데 ‘경제ㆍ민생 문제 해결 부족’(32%)이 으뜸으로 꼽혔다. 남은 임기 동안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 보여주는 수치다.
이제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아직 문 정부의 실패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분배 개선, 대ㆍ중소기업 상생,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혁신은 모든 국민이 바라는 바다. 반환점을 앞둔 문 정부의 지난 2년반을 되돌아 보고, 남은 임기 동안 “성공한 정부, 성공한 대통령”이 될 방안을 5회에 걸쳐 고민해본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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