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대한치매학회 이사장(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

막스 베버는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꼽았다. 요즘 우리 정치에서 열정적인 신념이 넘치지만 현실을 관조하는 균형적 감각에 기반한 책임윤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만 그럴까. 기초과학 연구자도 연구에 대한 열정, 책임감과 균형감각을 제대로 갖췄는지 반성해 본다. 우리는 왜 이웃 일본과 달리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을 받는 이가 없을까. 열정적인 부모의 노력에 의해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을 향한 교수들의 교육법은 미래지향적인가. 우리는 수백 년 동안 갈등과 진통을 겪으면서 민주주의를 일구어낸 서구와 달리 압축 성장이라는 목표에만 매달린 것은 아닌가. 모든 분야 특히 교육·연구분야에서 자성해야 할 때다.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구투자 규모는 78.8조원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5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위였다. 연구개발인력은 38만3,100명으로 6위를 기록했다. 우리의 과학기술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연구성과는 이에 어림도 없는 상황이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나라 연구자가 게으른 탓일까. 기초의학 투자가 적은 탓일까. 장인정신이 없는 탓일까.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미국과 유럽, 일본의 공통적인 특징은 고도의 연구클러스터가 마련돼 있다는 점과 이들의 연구를 집중 지원할 수 있는 산업경제 기반이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협동-융합-상생연구가 부족한데다 그 동안 정부마다 백년대계가 되어야 할 교육과 연구를 자신의 집권하는 기간에 성과를 내려는 성급함이 문제이다. 정부의 공약에 따라 연구주제뿐만 아니라 방향까지 바뀐다. 게다가 줄기세포·국가치매사업·미세먼지 등 정부 차원에서 큰 주제가 마련될 때마다 다른 분야에 분배된 연구비도 이 분야로 집중되는 상황이다. 이런 탓에 연구비 없이는 연구를 수행할 없는 연구자는 수십 년간 천착해 온 자신의 연구주제를 포기하고 새로운 주제로 갈아타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 예산 편성·집행 문제로 연구비를 회기 연도 내에 모두 지출하고, 매년 성과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등으로 심도 있는 연구보다는 평가서를 제출하기에 급급한 현실,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심사하는 과정에 소요되는 예산은 거의 책정되지 않고 재빠른 평가과정 등만 강조되고 있다. 재고되고 수정돼야 할 일이다.

입시를 치르듯 일정 시점에만 연구비를 신청하고 절대 평가보다 상대 평가로 연구비를 집행하는 현실에서 상시 연구주제를 접수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많은 심사자가 함께 심사 숙고해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를 내기 위해 보완해주도록 바꿔야 할 시점이다.

바이오 선진국이 되려면 규제기관 소속 전문가 육성시스템 마련과 전문가 권위가 인정되고 규제기관의 유연성 있는 결정도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문 분야를 임시직이나 순환직으로 놔두면 어느 누가 열정적인 신념과 책임 윤리를 갖고 일에 전념할까.

미래연구의 주체인 연구자와 규제기관이 서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는 것이 더 미래지향적이지 아닐까. 신 의료기술, 신 치료법을 소신을 갖고 명확히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투자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연구자와 규제기관이 갑을 관계가 아니고 서로 끌어주고 협력해야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성과도 나올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율성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책임윤리에 기반한 열정적인 신념을 갖는 연구자로 구성된 고도의 연구클러스터가 마련돼야 한다. 또한 이를 평가하고 조율하는 국가평가기관에는 지위와 충분한 보수가 보장되고 누구보다 해박한 연구분야 평가 지식을 갖추고 균형적인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 공무원이 있어야 미래과학연구가 밝아진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존경 받은 사람이 별로 없다. 아집으로 가득한 신념보다 균형 잡힌 책임의식이 강조돼야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처럼 오랫동안 존경 받을 정치인·과학자·교육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김승현 대한치매학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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