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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Why] “오보 내면 출입금지” 법무부 훈령 왜 시끄럽지?

입력
2019.11.0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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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오보대응, ‘언론 통제’ ‘헌법 위반’ 논란 휩싸여 

 각계 거센 반발에 법무부 “의무 아닌 재량” 무마 나서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출입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무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안’(법무부 훈령)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습니다. 법무부가 공개한 훈령에 ‘오보를 쓴 기자와 언론사의 검찰청 출입을 제한한다’는 유례없는 ‘패널티’ 조항이 담겼기 때문이죠.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낸 안이었지만 발표와 동시에 시대착오적인 공보 기준이라는 비판에 휩싸였습니다. 기자들의 집단 반발은 물론이고 언론학계와 정치권에서도 언론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성토가 쏟아졌습니다. 법무부 훈령,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보’ 쓰면 쫓아낸다, 배경은? 

법무부 훈령은 검찰 내사사실을 포함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 등 형사사건 관련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를 금지하겠다는 게 요지입니다. 공개 금지 정보는 피의자, 참고인의 인격 및 사생활, 범죄 전력, 진술과 증언 내용, 검증 내용, 증거 내용 등입니다. 이를 위해 수사 중인 사건은 전문공보관이 공보자료로만 공보할 수 있고, 공개 여부에 대한 결정은 민간위원이 과반수인 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거치게 됩니다. 또 수사 중인 사건관계자 촬영 및 방송도 제한됩니다. 공개 소환 금지는 물론이고 초상권 보호를 위해 압수수색과 체포, 구속 수사 과정에서 포토라인도 전면 금지됩니다. 여기에 논란이 된 ‘오보 대응’ 조항이 새로 포함됐습니다.

33조 오보 대응 조항을 살펴볼까요. 특히 문제가 되는 건 33조 2항입니다. 여기선 ‘오보를 한 기자 등 언론기관 종사자에 대해 검찰청 출입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정했습니다. 오보를 쓸 경우 기관이 할 수 있는 정정ㆍ반론보도 요구 등 일반적인 조치를 넘어 해당 기자의 브리핑 참석 및 검찰청사 출입을 막는 언론 통제 조치를 하도록 한 겁니다. 쉽게 말해 검찰이 기자에게 직접 패널티를 주겠다는 거죠.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출입기자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한 출입기자가 기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오보의 판단은 누가, 어떻게 하나요? 

그렇다면 특정 보도가 오보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해당 규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오보 기준이 가장 중요하겠죠. 보도에 대한 최종 판단에는 판단 주체,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 의도성 등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당 조항에선 판단 주체로 검찰총장과 각급 검찰청 검사장을 명시했을 뿐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결국 오보 여부 판단을 사법부 등 다른 기관에 맡기지 않고 수사기관인 검찰이 하고, 이를 통해 제재까지 강제하겠다는 거죠.

이 조항은 법무부 훈령이기 때문에 입법 예고 없이 장관 권한대행인 김오수 법무부 차관의 서명으로 시행됩니다. 내부 지침이기 때문에 대외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산하 기간인 검찰의 경우 이 지침을 위반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법무부는 12월 1일부터 이 규정이 시행된다고 밝혔죠.

이 규정은 기본적으로 ‘검찰의 대응’입니다. 시행이 될 경우 당장 검찰에서는 오보라는 취지로 언론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검찰이 선제적으로 오보 대응을 하게 되면 사실관계 규명을 위한 언론의 취재 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기죠. 역으로 검찰이 자의적으로 오보 판단을 하는 경우엔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대검찰청 청사. 뉴스1
대검찰청 청사. 뉴스1

 

 ◇일방적인 취재 제한, 뭔가 문제죠?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명예훼손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사 담당자들의 언론 접촉 자체를 차단하고 보도 내용을 수사기관 스스로 판단, 제재하게 되면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릅니다. 자의적인 오보 기준으로 사회적 파장이 큰 수사 내용에 대한 비판, 의혹 제기 등 언론 기능이 심각하게 위축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당장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 정신을 부정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번 결정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기자실 폐쇄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취재 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 일명 기자실 폐쇄를 추진했습니다. 임기 말 언론이 반발하는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내부 반발도 있었지만, 청와대는 이를 추진했어요. 당시 진보와 보수 언론 모두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 침해를 이유로 거세게 저항했고, 결국 무산됐죠.

이번에도 법무부 발표 후 하루 만에 언론계와 학계,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로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조치를 ‘언론 통제’라고 규정하고 “언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시행되면 감시 기능은 크게 무력화 될 수밖에 없다”고 항의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 불문하고 비판이 거셉니다. 1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법무부 훈령은) 자유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초자유민주주의적 발상”이라며 “오보에 대한 최종 (판단) 주체는 사법부인데 국민의 알 권리와 합리적 의혹을 고려하지 않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오보 기준도 불명확하고, 오보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수단도 있다. 실제로 출입 제한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발표 하루 만인 지난달 31일 “현행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 27조에 있던 ‘수사 지장 초래’, ‘추측성 보도’ 등을 삭제하고, 인권을 침해한 오보가 실재하는 경우에만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이어 “판단 주체는 각급 검찰청의 장이고, 판단은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재량 사항”이라고 단서도 달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오보 판단 기준이 모호해 법무부 조치를 두고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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