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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지능과 키를 유전자검사로 선별?

입력
2019.11.02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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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와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이 말과 ‘키 유전자’ ‘지능 유전자’라는 용어는 엄격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양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마치 유전자가 인간의 주요 특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배아를 선별해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녀를 얻고 싶지 않으냐며 부모의 욕망을 은근히 부추긴다. ©게티이미지뱅크
키와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이 말과 ‘키 유전자’ ‘지능 유전자’라는 용어는 엄격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양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마치 유전자가 인간의 주요 특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배아를 선별해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녀를 얻고 싶지 않으냐며 부모의 욕망을 은근히 부추긴다.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별다른 테스트 없이 나의 지능지수(IQ)를 간단히 알려주는 서비스가 은근히 인기를 끌고 있다. 내가 장차 질병에 걸릴 확률을 알려주던 민간 유전자검사 업체들이 4달러 정도를 더 내면 지능 정보도 제공한다. 타액 샘플을 보내고 ‘지능 앱’을 열면 정규분포 곡선에서 내 지능이 상대적으로 어느 위치인지 알 수 있다.

성인이라면 심심풀이 정도의 서비스로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자녀의 지능을 가급적 미리 알고 싶은 부모의 입장이라면 좀 진지해질 것 같다. 갓 태어난 아기보다 훨씬 앞서 배아 단계에서 지능을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또는 체외수정으로 여러 배아를 얻고, 이 가운데 가장 지능이 높아 보이는 배아를 골라 임신할 수 있다면?

이쯤 되면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미 현실에서 시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최근 과학계의 발표를 보면 영화와 한 가지 차이점은 있다. 아무리 검사해 봐야 부모의 지능을 훌쩍 뛰어넘는 배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유전자검사 업체 지노믹 프리딕션은 배아의 지능지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개시한다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체외수정으로 얻은 여러 배아를 검사하는 착상전 유전자진단(PGD) 기법은 이미 활용돼 왔다. 유전자 결함으로 난치병을 앓고 있거나 불임인 부부가 건강한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이다. 여기서 유전자검사는 주로 하나의 유전자가 특정 질병을 일으킨다고 명확하게 알려진 경우에 유효하다. 하지만 지능은 다르다. 지능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도 문제지만,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가 수백 개 이상이라는 것이 과학계의 판단이다.

지노믹 프리딕션은 다중 유전자검사 기법을 활용해 이들 수백 개 유전자로부터 지능지수를 산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장은 평균보다 낮은 지능지수를 가진 배아를 가려내겠지만, 조만간 고객이 높은 지능의 배아를 원하리라 전망했다. 윤리적 논란을 떠나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높은 지능을 가질 수 있을까.

과학계도 진지하게 관심을 가질 사안이었나 보다. 최근 미국인간유전학회에서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통계유전학 연구진은 지노믹 프리딕션의 시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부모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키와 지능지수에 대해서였다.

연구진은 키가 얼마인지 알려진 유대인 남녀 102쌍의 유전정보를 컴퓨터에서 다양하게 조합해 가상의 배아들을 만들었다. 만일 ‘키 크는 유전자’가 정확히 조합된 배아라면 다른 조합에 비해 훨씬 큰 키가 기대될 것이다. 하지만 2.5㎝가 점수에 따른 최대치였다. 이번에는 그리스인 919쌍을 대상으로 배아의 지능지수를 계산했다. 가장 높게 나타난 수치는 2.5에 불과했다. 유전자검사로 배아를 잘 선택해도 미미한 ‘성공’에 그칠 것이라는 얘기다.

키에 대해서는 실제 가족을 대상으로도 조사했다. 자손이 10명 이상인 25가족을 확인한 결과 키의 검사점수가 가장 높은 자손이 실제로 가장 크게 자란 경우는 7가족뿐이었다. 심지어 점수가 가장 높았지만 평균보다 작은 사례가 5가족에서 발견됐다. 연구진은 지능지수도 비슷한 결과를 보일 것이라 예측했다.

키와 지능과 ‘관련된’ 유전자는 분명 있을 것이다. 이 말과 ‘키 유전자’ ‘지능 유전자’라는 용어는 엄격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일반인에게 양자의 차이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과학의 이름을 빌려 마치 유전자가 인간의 주요 특성을 결정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배아를 선별해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녀를 얻고 싶지 않으냐며 부모의 욕망을 은근히 부추긴다. 유전자의 정체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잊은 채 무의미하게 행하는 시도가 아닐까.

김훈기 홍익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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