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법 적용되는 웹툰업계에 도서정가제 적용 여부 두고 갑론을박
무료 웹툰 기준 없어 오해 불거져
교과서로 만화책을 몰래 감싸 읽어본 적 있다면? 옛날 사람! 방과 후 친구들과 우르르 만화방으로 몰려간 기억이 있다면? 더 옛날 사람!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만화를 봅니다. 만화보다는 ‘웹툰’이라고 불리는 이 콘텐츠는 스마트폰 보급률과 함께 빠른 속도로 대중문화의 한 축이 됐는데요. 영화나 드라마도 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 위상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거라는 웹툰, 그만큼 ‘충성 독자’들도 많은데요. 최근 웹툰 독자들을 뿔나게 한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도서정가제’입니다.
책값을 지나치게 저렴하게 책정해 출판산업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고자 시행된 도서정가제가 웹툰 시장을 위협한다니,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도서정가제가 살짝 억울한 상황입니다. 이런 의혹은 왜 나온 걸까요.
◇억울한 도서정가제, 오해가 오해를 낳았다?
사건의 발단은 한 웹툰 정보 공유 사이트 ‘웹인’에 올라온 글이었습니다. 이 글에는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전자책 유통사 및 플랫폼 대표에게 보낸 공문이 공개돼 있는데요. 작성자는 정가 표시와 관련, 웹툰 코인 체계를 바꿔야 하는 업계 사정 등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번지면서 “무료 웹툰이 없어지는 것 아니야”라는 의문과 이에 따른 불안이 퍼졌습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에 지난 9월 올라온 글을 보면 글쓴이는 이 공문을 두고 “완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기다렸다가 무료로 보는 웹툰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겠지”라고 주장했어요. 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서정가제 폐지를 청원하는 국민청원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지요. 그 결과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은 지난달 31일 오후 4시 기준, 19만 명 이상으로부터 동의를 얻어 답변 요건인 ‘20만 동의’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은 “앞으로 모든 웹툰이 유료화되는 건가”라고 묻거나 “각 대학 대나무숲으로 퍼다 나르자”며 이슈를 확산했어요.
◇웹툰 유료화(X), 웹툰 가격 알아보기 쉽게 표시하라!
도서정가제는 무료 웹툰을 막는 제도가 아닙니다. 또 인터넷에 떠도는 ‘전자책 유통사의 정가표시 준수 관련 협조문’의 요지는 무료 웹툰을 없애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구매자가 전자 출판물의 정가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가를 원화로 표시하라는 내용이에요. 과자 2개, 동전 2개 대신 우리 화폐 단위인 200원, 400원으로 알기 쉽게 같이 표시하라는 뜻이죠. 독자들이 매번 ‘웹툰 과자 1개는 우리 돈으로 얼마라는 거지’라며 계산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유료 웹툰 가격을 원화 병기 표시하라는 지침은 출판법 22조 3항에 따른 것입니다. “전자 출판물의 경우에는 출판사가 정가를 서지정보에 명기하고 전자 출판물을 판매하는 자는 출판사가 서지정보에 명기한 정가를 구매자가 식별할 수 있도록 판매사이트에 표시하여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돈을 더 받겠다거나 무료였는데 이젠 돈을 받겠다는 말이 아닌 겁니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를 운영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많은 업체가 각자의 단어로 화폐 단위를 정해 쓰고 있었는데, 소비자들이 혼동하지 않도록 원화 병기를 권고한 협조문”이라며 “이미 주요 웹툰 플랫폼을 보면 원화로 병기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웹툰과 국제표준도서번호는 왜 엮이게 됐나
웹툰이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를 받는 이유는 출판물이 되는 과정에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ISBN은 전 세계 모든 도서의 초판, 개정판, 증보판 등의 발행에 앞서 붙이는 고유번호입니다. ‘웹툰을 앞으로 쭉 영구적으로 인터넷에만 무료로 연재하겠다’라고 하면 굳이 ISBN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겠죠. 하지만 웹툰을 책으로 묶어서 출판하고 서점에서 유통되게 하려면 ISBN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웹툰은 회차별로 연재되다 보니 회차별로 ISBN을 부여하는 건 행정적으로도 낭비인데요. 이 문제의 해법은 웹툰을 회차별이 아닌 제목이 같은 종당으로 구분해 ISBN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럼 회차별로 판매하는 건 누가 관리할까요? 그건 웹툰을 도서로 만든 출판사가 결정하는 사항입니다.
결론적으로, 무료 웹툰을 계속 볼 수 있을지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무료 웹툰에 대한 기준은 아직 검토된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연재 중인 웹툰이면 출판물이 되기 전, 다시 말해 ISBN을 부여받기 전 유료화 여부는 웹툰 플랫폼의 결정에 달린 셈이죠. 소소하지만 확실한 흥밋거리인 웹툰, 웹툰 플랫폼의 변심만 없다면 앞으로도 가벼운 주머니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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