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이 판문점서 북측에 받아, 문 대통령에 전달 때까지 깜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전달한 사실을 통일부가 반나절 가까이 모르고 있던 것으로 확인돼 ‘통일부 패싱’ 논란이 나오고 있다.
31일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은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북측 실무자로부터 조의문을 받았다. 이후 윤 실장은 즉각 판문점을 출발, 오후 9시 35분쯤 빈소가 마련된 부산 남천성당에 도착해 문 대통령에게 직접 조의문을 전달했다. 판문점에서 남천성당 간 거리는 470㎞에 달한다. 이동거리를 고려하면 윤 실장이 조의문을 전달 받은 시각은 늦은 오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에 있던 윤 실장이 판문점까지 이동한 시간을 고려해도 청와대가 북측으로부터 조의문 전달 의사를 접한 것은 그보다 더 이른 시각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남북 대화의 공식 창구인 통일부 장관이 이런 사실을 저녁 늦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김연철 장관은 이날 오후 7시쯤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통위원장이 “북측에서 조문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 조화나 조전이나 전혀 기별이 없나”고 묻자, “네. 별도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답변했다. 개성공단 내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북측에 모친상 소식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측에서 따로 통지도 없었다는 취지였다.
패싱 논란이 불거지자 통일부는 이날 오후 뒤늦게 “문 대통령에게 조의문이 전달된 이후에 상황을 공유 받았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즉각적인 정보공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 것이다. 전직 정부 고위관료는 “남북 간 연락 채널은 크게 통일부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청와대 핫라인”이라며 “청와대가 대통령의 모친상이 국가적 사안이 아닌, 개인적 사안으로 판단해 김 위원장이 조의문을 보낸 사실을 즉각 통일부에 공유하지 않았다면 크게 논란이 될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의 조의문을 직접 받아 문 대통령에게 전달한 윤 실장은 이번에도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서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윤 실장은 남북관계 중대 국면마다 물밑 조율을 톡톡히 해왔다. 지난해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대북특사단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 1차 남북 정상회담(판문점)과 3차 남북 정상회담(평양) 고위급 실무협의에 참여했다. 올해 6월 열린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무대 뒤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인 사람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 윤 실장은 회담 당일 아침 판문점으로 미리 이동, 정상들의 하차 지점과 동선 등을 두고 미국, 북한 측과 사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여권에선 ‘내년 총선에 윤 실장이 부천 지역구에서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