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비어 있는데, 여기에 적합한 기술을 갖춘 구직자는 충분하지 않아요. 이 간극은 역설(paradox)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에 위치한 제조업체 ‘피셉(Ficep)’의 부사장 바버라 콜롬보의 말이다. 그의 가족이 3대째 운영해 온 이 회사는 공업용 기계를 생산해 126개국에 수출할 만큼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인력 부족이 문제다. 보수가 좋은 편인데도, 지역 청년들이 공장 취업을 꺼리고 있어서다. 지난해 이 지역 산업단지 입주 기업들이 희망한 신규 인력 채용 규모는 300명이었던 반면, 현지 직업학교가 배출한 졸업생은 고작 80명뿐이었다.
기술자를 우대해온 유럽에서조차 숙련된 기술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탈리아 현지 르포를 통해 유럽 각국 청년들의 기술직 기피 현상을 보도했다. 중소 규모 제조업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나 디지털 지식이 풍부한 젊은이들을 기꺼이 채용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그에 걸맞은 후보들을 찾는 게 힘들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이 같은 현상은 10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비롯됐다. 과거 산업계의 요구를 충족하는 인력을 배출했던 직업학교들은 경제 상황 악화에 따라 지출을 줄였고, 그 이후의 기술 변화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자연스레 기존 업체는 물론, 신생 업체들이 인력 채용을 위해 직업학교를 찾는 경향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전문 기술 인력 양성 시스템이 약화된 셈이다.
하지만 제조업계가 필요로 하는 ‘능력’은 좀 더 복잡해졌다. 과거엔 하나의 기계를 작동하는 법만 알아도 충분했지만, 이제는 작업 전반을 프로그래밍하고 감독할 줄 아는 인력을 요구하는 환경이 됐다는 얘기다. 콜롬보 부사장은 “젊은 사람들의 DNA에 담긴 능력”이라며 “하지만 이탈리아에선 제조업에 대해 ‘어둡고, 위험하며, 어려운 일’이라는 편견이 생겼다”고 말했다. 제조업에 관심을 갖는 청년들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인근의 다른 제조업체 대표인 루이기 갈다비니도 “시장에서 바라지 않는 걸 공부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이탈리아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고 WSJ는 지적했다. 예컨대 기술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에서조차 최근 수년간 숙련된 인력이 부족해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 신문은 “글로벌 경기 둔화 이후 유럽의 제조업 부문이 약해졌지만, 이제 유럽의 수출품에 대한 수요가 원상회복됐다”며 “기술인력 수요를 채우지 못하면 경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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