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소재 국산화 성공, 수출기업으로 클 기회 얻어”
31일 오전 경기 화성시 마도면 마도산업단지 내 ㈜써브 공장 앞. 안쪽에서 쇠를 깎는 듯 한 소리가 들렸고, 직원들은 각 공정에서 나온 제품의 불량 여부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무실로 들어서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팔레트 등이 곳곳에 놓였다.
알루미늄 팔레트는 이 회사 김진섭 대표가 5년여의 연구 끝에 개발, 국산화에 성공한 제품이다. 팔레트는 통상 물류창고 등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적재된 물건을 옮길 때 물건을 올려놓는 일종의 받침대를 말한다.
김 대표는 2010년 12월 회사를 설립해 상용화에 착수, 현재는 종근당과 한미약품, 삼성ㆍLG 등 의약ㆍ식품ㆍ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의 업체 등에 납품하고 있다.
그의 알루미늄 팔레트는 항공분야에서 소재부품 국산화 1호여서 의미가 더 크다. 그가 연구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항공분야는 항공수하물용 팔레트와 항공 컨테이너 등 2가지다.
팔레트는 고객의 수하물을 항공기까지 운반하는 데 쓰이는 것이고, 항공 컨테이너는 기내에 수하물을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수하물용 팔레트는 국토교통부로부터 ‘항공기 탑재장비 기술 표준품 형식승인(KTSO)’를 획득했고, 컨테이너는 현재 절차를 밟고 있다.
김 대표의 연이은 기술개발 성공 요인 중엔 경기도의 지원도 크게 한몫했다. 경기도가 선정하는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기업’에 뽑혀 운영자금 4억원을 지원받았던 게 기술개발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김 대표는 “기술개발과 함께 국산화에 성공함으로써 관련 업체는 비용절감을, 우리는 수출도 하고 일자리 창출도 하는 수출기업으로 클 수 있는 기회가 됐다”라고 말했다.
수원시 권선구 수원산업단지에 위치한 ㈜이에스테크인터내셔널도 경기도가 선정한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기업’ 중 하나다. 개발지원금 2억원(운영자금)을 지원받아 ‘난연 소재 광케이블’ 국산화에 성공하는 쾌거를 거뒀다. 현재 시험인증 단계에 있지만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장 내년부터 국내 통신사에 케이블 공급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황병선 대표는 “일본 소재 제품 사용 대비 30% 이상을 원가(투자) 절감할 수 있게 됐다”며 “국내 광케이블 규모는 2,000억원 이상으로 해외 제품을 국산화 전환 시 절감효과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경기도가 소재부품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 붙이면서 기업들도 값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도는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국산 소재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소재 부품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경기도, 4년간 소재부품 산업에 1947억원 투자
31일 도에 따르면 2022년까지 4년간 소재부품 산업에 1,947억원을 투자한다. 소재부품 연구개발(R&D), 외국투자기업 유치, 소재부품 국산화, 대ㆍ중소기업 협력 연구개발단지 조성, 국산화 설비 투자 특례보증 지원 등 다양한 대응전략도 짰다.
먼저 기술 자립화가 시급한 소재부품장비 기업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기술 허브’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일본에 의존해온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해 사업현장 일선에 있는 기업의 연구개발을 뒷받침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이를 통해 대일 의존도를 소재의 경우 94% 에서 50% 이하로, 핵심장비 산업은 52%에서 30%로 대폭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일본이 지난 7월 수출규제조치를 시행하면서 가장 우려가 됐던 곳이 바로 경기도였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세계적인 기업과 관련 스타트업들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도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피해 기업 지원을 위해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고 비상대응 태스크포스(TF)도 가동했다. 피해가 우려되는 기업에 100억원 규모의 특별경영자금을 지원하고 326억원 규모의 일본 수출규제 대응사업 예산도 긴급 편성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았다. 분위기 반전을 이룬 성과도 냈다. 9월 세계적인 반도체장비 기업인 ‘램리서치’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반도체 제조공정의 핵심 장비를 연구‧개발하는 ‘한국테크놀로지센터(가칭)’를 공동 설립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초기투자액만 1억달러(약 1,170억원)로 300개 일자리 창출도 따른다.
‘한국테크놀로지센터’ 유치로 경기도는 삼성전자(기흥ㆍ화성ㆍ평택)와 SK하이닉스(이천ㆍ용인), 한국테크놀로지센터로 이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됐다.
소재부품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러시아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협약에 따라 도는 안산에 있는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에 경기러시아기술협력센터를 설치하고, 러시아는 센터를 통해 기술 발굴과 도내 기업과 러시아 기업 간 매칭을 지원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기초과학과 첨단과학 분야에서 원천 기술을 보유한 러시아의 각종기관 및 기업과 협력해 세계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삼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시스템 반도체 소재 국산화에도 박차
미래의 혁신성장사업인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 소재 국산화 연구에도 재정을 푼다. 시스템 반도체는 인공지능(AI)ㆍ사물인터넷(IoT)ㆍ자율주행 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핵심 부품으로, 반도체 시장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 잠재력이 크다.
이에 도는 2022년까지 초고속 통신용 시스템 반도체의 일종인 에피웨이퍼 국산화 지원(도비 30억)을 통해, 소재 기술 자립과 함께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인프라 확충에도 주력한다. SK하이닉스와 국내외 50개 이상 반도체 장비소재부품 업체가 입주할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산업단지가 대표적이다. 448만㎡ 부지에 사업비 122조원을 들여 2036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고용창출 인원만 1만7,000명에 달할 정도로 관련 소재 부품 산업의 핵심 기반이다.
경기도는 사실 전국 소재부품산업의 심장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소재부품 사업체의 35%(9,134개)가 경기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기업에서 전체 생산액의 30%(22조4,634억원)가 나온다. 경기도가 소재 부품 기업 지원에 사활을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 관계자는 “핵심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를 위한 기술 개발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집중적인 지원이 이뤄져야만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며 “경기도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적극 대응해 나가는 만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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