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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깨웠다며 폭언, 술 취해 성추행까지 “가스검침 나갈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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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깨웠다며 폭언, 술 취해 성추행까지 “가스검침 나갈 때마다 너무 불안해요”

입력
2019.10.31 17:40
수정
2019.10.31 21: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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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도시가스 방문노동자 안전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 중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 피해 사례 등을 발표하고 근본적인 방지 대책을 만들 것을 서울시에 촉구했다. 사진=손성원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31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도시가스 방문노동자 안전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 중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 피해 사례 등을 발표하고 근본적인 방지 대책을 만들 것을 서울시에 촉구했다. 사진=손성원 기자

# “잠자는데 시끄러워. 이 개 같은 X이.” 지난해 여름 서울도시가스 검침원 A(51)씨는 가스검침을 위해 찾은 고객의 집 앞에서 ‘도시가스입니다’라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집 안에 있던 고객이 잠자는데 시끄럽다고 욕설을 하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와서다. 금방이라도 때릴 것처럼 나온 고객을 보고 놀란 A씨는 그대로 윗집으로 피신했다. A씨는 이 일을 겪고 난 뒤로는 검침을 나갈 때마다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 도시가스 검침원 B(52)씨는 지난달 21일 오후 5시쯤 도시가스 점검을 위해 방문했던 집에서 성추행을 당한 후 정신건강의학과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술을 마시고 있던 집주인이 갑자기 팔과 허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던 것.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B씨는 갑자기 숨이 가빠오는 과호흡 증상을 겪었고, 겨우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업무 중 고객의 폭언과 성희롱 등 위험에 노출돼 있는 서울도시가스 검침원들이 서울시에 근본적인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31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와 도시가스사(공급사)에 검침원의 안전한 업무 환경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불합리한 점검제도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서울도시가스 검침원이 속한 노조의 조합원 95명 중 90명이 여성이다.

이들은 도시가스 회사가 검침원이 소속된 하청업체(고객센터)에 무리하게 점검완료 실적을 높일 것을 요구하면서 검침원들이 고객과 갈등을 겪거나 성희롱 등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시가스 회사의 눈치를 보는 하청업체들이 문제제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넘기기 일쑤라고 설명한다. 이태의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1인당 4,000~5,000세대의 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이 깎이기 때문에 실적 압박을 받는다”고 말했다. 폭언 등에 노출된 이후에도 같은 집에 또 방문을 해야 하는 일까지 있다.

현행 도시가스사업법상 모든 가스사용세대는 1년에 1회 이상 안전점검을 받도록 규정돼 있는데, 3회 이상 고객 부재하거나 본인 거부할 때만 점검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상 의무적으로 모든 집을 방문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폭언과 성희롱 등에 노출된 직원을 보호할 할만한 규정은 없다.

노조는 집집마다 방문해 점검하는 업무 특성상 노동자 안전을 위해 2인1조 근무를 강제하는 등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서울시가 조례 제정 등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는 고객센터에서 개인용정보단말기(PDA)에 긴급호출(SOS)기능을 넣거나 호신용 가스 스프레이를 지급하는 정도가 안전대책의 전부다. 또 과도한 실적 압박으로 무리한 점검검침업무를 수행하지 않도록 업무체계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가스사인 예스코의 김효경 점검검침노동자 분회장은 “올해 5월에도 한 동료가 점검차 방문한 집에 감금되는 사건이 있어 회사에 말했지만 담당 팀장 등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울산에서는 올해 5월 성폭력 피해를 당한 경동도시가스 검침원이 자살시도를 한 이후 탄력적이나마 2인1조 근무를 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김윤수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점검 업무를 하는 방문노동자들의 노동 안전은 시민들의 안전한 도시가스 사용과도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서울시 녹색에너지과 관계자는 “성희롱 등 피해 예방을 위해 문제가 발생했던 가구를 모아 특별관리세대 목록을 만들고, 이런 세대에는 여성 대신 남성 검침원이 방문하게 하는 등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노조, 도시가스사들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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