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읽어본다,SF] 물이 사라지자 인간은 좀비가 됐다

입력
2019.11.01 04:40
22면
0 0

※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19>닐ㆍ재러드 셔스터먼 ‘드라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살 때의 일이다. 자리를 잡고 나서 처음 수도 요금 고지서를 받고서 깜짝 놀랐다. 북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콜로라도주에서 고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캘리포니아주 남부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은 1,000㎞도 더 떨어져 있는 북쪽에서 온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눈에 띄지 않던 풍경이 보였다. 내가 살던 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물이 닿는 곳과 닿지 않는 곳. 스프링클러가 정기적으로 물을 뿌려 주는 곳에는 나무도 있고, 잔디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 못한 나대지는 선인장과 방울뱀의 차지였다. 사실상 사막.

생각했다. ‘이 부유하고 살기 좋은 도시는 물이 끊기면 끝장나겠구나.’ 닐ㆍ재러드 셔스터먼 부자가 함께 쓴 ‘드라이’(창비)는 바로 이런 무서운 상상을 현실로 그린 소설이다.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진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콜로라도주에서 캘리포니아주 남부로 오던 물이 끊긴다. 단수. 단수 첫날, 10대 주인공 얼리사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수도꼭지가 말라 버린 이 순간(6월 4일 오후 1시 32분)을 기억하게 될지도 몰라, 대통령이 암살된 순간을 기억하듯이.’

이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대형 할인점의 물을 포함한 음료수는 곧바로 동이 났다. 하루하루 단수가 계속될수록 “애초에 실존하는 위험을 직시할 생각이 없는 무방비 상태의 다수”도 무서운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목은 마르고, 몸은 더럽고, 곳곳에서 악취가 나는 순간 마침내 사람들은 ‘워터 좀비’로 돌변한다.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생존에 꼭 필요한 물을 흡수하지 못해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물을 찾아 헤맨다(워터).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영화나 소설 속 좀비가 아무런 자의식 없이 사람들을 물어뜯는 본능만 남은 것처럼, 이들도 물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좀비). 이렇게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며칠이었다.

‘드라이’는 중요한 삶의 진실 몇 가지를 전한다. 지금 물을 둘러싼 가장 심각한 갈등은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진행 중이다. 농촌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도시는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서 그 물을 포기하지 못한다. 농촌에 물이 충분하지 않을 때, 결국 피해는 도시가 입는다. 먹거리를 구하지 못할 테니까.

‘드라이’에서 단수가 일어나기 전에 일어났던 일이 바로 이랬다. 여기서 또 다른 삶의 진실을 알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 남부처럼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도시 문명은 사실 아주 취약한 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평소에는 공기처럼 당연히 여겼던 물이 끊기는 일이 일어나서 그 기반의 한쪽이 무너지면 그때부터 재앙이 시작된다.

또 있다. 이런 비상상황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생존 그 자체보다도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 평소에는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위기 상황에서는 순식간에 그 탈을 벗고 짐승보다 못 한 존재인 좀비로 돌변한다. 이런 좀비는 위기 상황을 회복 불가능한 지옥으로 몰고 간다.

이 책의 저자 닐 셔스터먼은 청소년을 독자로 하는 이른바 ‘영 어덜트’ 장르의 장인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무시하면 큰일 난다. 독특한 설정, 눈길을 뗄 수 없는 스토리텔링, 묵직한 문제의식까지 웬만한 성인 소설보다 낫다. 시나리오 작가인 아들 재러드 셔스터먼과 협업을 한 덕분에 ‘드라이’의 완성도는 더욱더 높아졌다.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 예정이다.)

불과 며칠 만에 꿈의 도시에서 악몽에서나 나올 법한 지옥으로 변한 캘리포니아 주 남부는 다시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까. 지옥 속에서 워터 좀비를 피해서 생존 투쟁에 나선 10대 주인공은 무사히 생명과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을까. 독자 여러분이 직접 확인할 차례다. 소설을 덮고 나면 수도꼭지의 차가운 물이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드라이

닐 셔스터먼, 재러드 셔스터먼 지음ㆍ이민희 옮김

창비 발행ㆍ460쪽ㆍ1만5,800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