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6시(현지 시간)쯤, 시리아 북부 이들립의 황량한 들판을 비추던 흑백 영상에서 는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된다. 화면 정 중앙에 위치한 표적 눈금을 향해 3, 4개의 검은 점이 추락하듯 빠르게 돌진했고, 이어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 오르며 화면 전체가 희뿌옇게 변한다. 비슷한 시간 다른 각도에서 드론이 촬영한 화면에는 한 건물 담벼락으로 은밀하게 접근하는 군인들의 모습, 들판에서 포격을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미군 특수부대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제거하는 작전 현장이다.
미국이 30일(현지시간)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을 촬영한 일부 영상을 공개했다. 케네스 멕켄지 미군 중부사령부 사령관은 이날 펜타곤에서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작전명 ‘케일라 뮬러’) 상황을 설명했다. 케일라 뮬러는 2013년 IS에 납치돼 18개월간 인질로 붙잡혀 고통을 겪고 희생된 미국인 여성 인권운동가의 이름이다.
이날 공개된 영상은 각각의 드론이 촬영한 총 3종류로, 미군이 알바그다디의 은신처로 접근하는 장면, 전투기와 드론이 IS 반군을 폭격하는 장면, 은신처를 정밀 폭격하는 모습 등이다. 미군은 자살폭탄 조끼로 두 아이와 함께 자폭한 알바그다디의 시신과 이전에 확보한 DNA샘플을 비교해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알바그다디의 최후를 담은 영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멕켄지 사령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알바그다디가 울면서 달아났고 개처럼 죽었다”고 언급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 확인을 거부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 종료 직후부터 자신의 트위터를 이용해 알바그다디의 사망 소식을 적극 전파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미국 주요 언론들은 작전 실행 막전막후를 상세히 보도했다. 알바그다디 최측근 신병 확보를 통한 소재 파악, 주변국의 은밀한 협력, 스파이를 통한 정보 수집 등 첩보 영화 시나리오를 방불케하는 작전 내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는 알바그다디 이후 IS 수괴 자리를 물려 받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 또한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동은 물론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IS 세력 수괴가 사라진 것은 당연히 안도할 일이지만, 워싱턴 정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작전 영상 공개뿐 아니라 신변 위협이 예상되는 스파이의 활동 내역이 보도되고 공을 세운 군견의 사진까지 적극 유포하는 상황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지역 안보공백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군시켰던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위기가 고조되자 이번 작전을 국면 전환용 카드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