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 ‘대변동’ 출간 기념 방한
“이념 갈등 극심, 한국 지도자 단합된 리더십 보여야”
미중 패권 다툼 “한쪽 편 들 필요 없어, 균형이 중요”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재러드 다이아몬드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가 31일 방한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해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위기는 불현듯 찾아오지 않는다. 숱한 경고 사이렌이 울리고, 몰락과 붕괴의 전조가 몰려온다. 그러나 대개는 모른 척한다. 알면서도 손 놓고 당한다. 세계적 석학 재러드 다이아몬드(82)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지리학과 교수가 위기를 극복하고 싶다면 위기 자체를 먼저 인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위기를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은 갈린다. 그가 보기엔 한국 역시 추락이냐, 번영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5월 출간한 ‘대변동-위기, 선택, 변화’(김영사)에서 다이아몬드 교수는 위기에 처한 6개국의 극복 과정을 살피며 ‘선택적 변화’만이 살아남는 길이라 진단했다. 책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는 3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각국의 사례에 빗대 한국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맞춤형 처방전을 제시했다. ‘노련한 대북 정책과 지도자의 단합된 리더십, 선제적 위기 대응 능력,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이 필요하단 주문이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꼽은 한국의 가장 큰 위기는 역시 북한이다. 대화가 오가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북한을 둘러싼 남북, 북미 대화는 실속 없이 요란만 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반면 핀란드는 조용하지만, 내실 있는 대화 전략을 택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해 늘 침략의 공포에 떨었던 약소국 핀란드가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러시아와의 물밑 대화를 지속한 덕분이었다.

대통령부터 내각 관료, 말단 공무원까지 양국의 소통 채널은 상시적으로 운영됐지만 두 나라 국민들은 까맣게 알지 못했다. 핀란드 정부가 이를 선전하거나 홍보하지 않고 철저히 비밀에 부쳤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런 핀란드를 신뢰했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날 때마다 떠들썩하게 홍보를 하는데 이 같은 만남은 어쩌다 한 번 아니냐. 지속적인 대화를 유지하기 위해 한국도 핀란드의 전략을 배워 보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를 두 동강 낸 진영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선, 지도자의 단합된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봤다. 국민들 마음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념 갈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그럴수록 리더의 역할은 국민의 단합을 이끌고, 각 민족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글날, 광복절, 한국전쟁 종전일 등에 맞춰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거나 국난 극복의 역사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 설명이다.

위기에 둔감해지지 않는 것, 또 상대와 대화의 끈을 유지하는 것은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그는 “사이가 나쁜 부부들이 문제를 방치하다 더 이상 못 살겠다고 나가 떨어지는 것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다. 선제적으로 대화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무조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등 돌리면 문제 해결은 요원해진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외전략으로는 균형감각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속에 한국은 일도양단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왜 꼭 선택을 해야 하냐.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한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중 사이에 균형을 잡아 가면 될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견제나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독재국가라는 점에서 열강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민주 국가에선 정부의 정책 방향이 잘못됐거나 실패하면, 시민들이 반대해 정책을 좌초시키거나, 선거를 통해 정부를 교체할 수 있지만 중국은 과오를 저질러도 막을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위기에 맞서는 건 미래를 지키기 위한 의무다. “지금 이 방향대로 치달으면 전 세계는 붕괴할 수밖에 없어요. 2050년 저는 세상에 없겠지만 1987년생인 제 쌍둥이 자식들은 살아남아 있을 텐데,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은퇴는 전혀 계획하지 않고 있다”는 이 노학자는 다음 책으로 정치, 경제, 종교 지도자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출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