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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놀이하듯 즐겁게 배우는 점자 학습기

입력
2019.10.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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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기기 탭틸로 개발한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는 점자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스마트점자학습기 ‘탭틸로’를 개발했다. 오파테크 제공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는 점자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스마트점자학습기 ‘탭틸로’를 개발했다. 오파테크 제공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언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점자는 중요한 사고의 도구다. 점자를 통해 글을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에 능숙한 건 아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장애등급 1~4급을 가진 시각장애인 7만4,300여명 중 12.4% 정도만 점자를 읽고 쓸 수 있었다.

이경황(40) 오파테크 대표는 점자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스마트 점자 학습 기기 ‘탭틸로’를 개발했다. 기기에 부착된 점자블록을 직접 조립하며 즐겁게 놀다 보면 자연스레 점자를 배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탭틸로를 사용하면 (점자를) 처음 배우는 시각장애인이라도 지루하지 않다”고 밝힌 이 대표는 “탭틸로를 통해 전 세계 점자 문맹률을 연 1%씩 낮추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점자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탭틸로의 첫인상은 귀엽다. 탭틸로는 핸드폰과 연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점자학습이 가능하다. 오파테크 제공
‘점자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라도 하듯 탭틸로의 첫인상은 귀엽다. 탭틸로는 핸드폰과 연결만 하면 언제 어디서나 점자학습이 가능하다. 오파테크 제공

귀여운 실로폰을 연상케 하는 탭틸로는 첫인상부터 친근했다. 탭틸로에 연동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음성이 흘러나온다. ‘엄마!’ 하단 디스플레이에 이 ‘엄마’에 해당하는 점자가 올라오면 사용자는 그 점자를 만지며 학습한다. 그리고 상단 점자블록에 자신이 학습한 점자를 입력하면 센서가 오답 여부를 판단하고 핸드폰이 이를 다시 음성으로 알려주는 식이다. 쉽고 간단한 학습 방식 덕에 빠르고 시각장애인은 수월하게 점자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개인 차는 있지만 탭틸로를 통해 점자 학습 시기를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단어 학습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는 탭틸로를 통해 음악과 외국어도 학습할 수 있다. 음악 학습이 어려운 기존의 점자 학습기를 보완하기 위해 이 대표는 탭틸로에 음악 학습 기능을 추가했다. 6점 체계를 따르는 점자에서, 위 4개 점으로 음계(도레미파솔라시도)를 표시하고 아래 2개 점으로 음의 길이를 표시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점자는 세계적으로 6점 체계를 사용한다”며 “탭틸로 하드웨어에 외국어 소프트웨어만 입력하면 외국어도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단의 점자 디스플레이로 점자를 학습한 후 상단 점자블록에 입력한다. 뒷면의 센서는 정답 여부를 알려준다. 사진은 상단 점자블록에 점자를 입력하는 사용자의 모습. 오파테크 제공
하단의 점자 디스플레이로 점자를 학습한 후 상단 점자블록에 입력한다. 뒷면의 센서는 정답 여부를 알려준다. 사진은 상단 점자블록에 점자를 입력하는 사용자의 모습. 오파테크 제공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려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원래 제3세계 국가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연료전지를 연구해왔다. 하지만 연료전지 사업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동료들과 함께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전공을 살리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연구와 개발을 하고 싶었다”는 이 대표는 우연히 주변의 권유 덕분에 시각장애인의 점자 학습을 돕는 보조공학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사업 시작을 위한 시장 조사 진행 과정에서 이 대표는 점자를 혼자서 학습하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여럿 만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워 대개 보조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보조교사의 수가 적고 일주일에 한 두 번 방문 하는 수준”이라며 “점자를 스스로 학습할 기회가 적어 점자를 혼자 깨우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점자는 비효율적이라거나 배우기도 까다롭다는 세간의 편견 탓에 점자 학습을 도와줄 교보재나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기도 하다”고도 했다.

탭틸로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시각장애인에게 공부 흥미를 일깨워준 점이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탭틸로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인상 깊은 피드백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우리 아이가 드디어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는 한 현지 학부모의 평가였다.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탭틸로의 교육 효과를 확인 받은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라서 놀랍고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아카데미'에서 현지 시각장애인이 탭틸로를 이용해 음악을 학습하는 모습. 오파테크 제공
미국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악아카데미'에서 현지 시각장애인이 탭틸로를 이용해 음악을 학습하는 모습. 오파테크 제공

2019년 현재 전국에 위치한 13곳 맹학교 대부분에서 활용되고 있는 탭틸로는 특히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 청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이들의 경우 선천적인 시각장애인과는 다르게 어렸을 때부터 점자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점자를 스스로 학습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 대표는 “(중도실명) 청년 장애인들은 바로 맹학교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 없어 스스로 점자를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며 “탭틸로는 장애 청년들에게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탭틸로는 더 이상 국내 시장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2017년 미국 세계보조공학박람회에 참가한 이래 이 대표는 현재 미국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점자교육을 통해 전 세계 문맹률을 매년 1%씩 낮추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이자 비전이라는 이 대표는 “저희의 보조공학 솔루션을 통해 그분들이 각자의 삶을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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