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간호사 5만명 광화문 모여 ‘간호법 제정’ 요구
“선배가 인사 안 받길래 한 번 더 했더니 ‘죽은 사람한테 절하냐’더라고요.”
간호사 김모(24)씨는 힘들게 입사한 대형 병원을 1년도 채 안 돼 그만두고 중소 병원으로 이직했다. '태움'(신입간호사 괴롭힘을 이르는 말) 때문이었다. 교대 시간에 인계를 해줘야 하는데 5년차 선배 간호사가 일부러 인계를 받지 않아 퇴근을 못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3년차 간호사 곽모(26)씨는 “태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관심병사’ 취급받는 분위기 때문에 언급조차 못 한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19 간호정책 선포식’에는 이처럼 간호사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개선을 촉구하고자 전국에서 5만명(주최측 추산)의 간호사와 간호 대학생이 모였다. 이들은 간호인력 기준 개선 등 간호계의 열악한 근무환경 해결을 촉구하는 ‘2019 간호정책 선포식’을 열고 별도의 ‘간호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전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며 “이는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법에서 간호사에 관한 부분을 독립시킨 단독 간호법 제정을 통해 간호사와 의사 간 관계를 수직적 관계에서 협력적 관계로 바꾸고, 간호인력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고 근무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내 간호 현장은 해외와 비교하면 매우 열악하다. 임상에서 활동하는 국내 간호사 수는 인구 1,000명당 3.5명으로 OECD 국가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평균 근속기간은 6.2년으로 해외 간호사 평균인 18.1년의 약 3분의 1에 불과하다. ‘태움’ 같은 관행 역시 개인의 잘못뿐 아니라 충분한 교육 기간조차 없이 바로 신입 간호사들을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현실이 더 큰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4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간호법안’을,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간호ㆍ조산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으나 의사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반대 속에 여전히 계류 중이다. 그러나 이날 행사에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대표들이 참가해 간호법 통과 가능성을 높였다.
이날 광장에 모인 젊은 간호사들은 ‘태움’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 반면, 이날 공식행사에서 태음과 관련한 발언은 거의 없었다. 이와 관련 손의식 대한간호협회 홍보팀장은 “간호법 제정 목적 중 하나가 간호사 근무환경 개선에 있다”며 “간호법 제정으로 태움을 야기할 수 있는 근무환경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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