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음원 시대 이색 풍경… 장르별 음악 소비 습성 따라 극과 극
‘2010년대 들어 최고 판매량’ CD시장ㆍ3년 연속 성장 LP시장 이변
커진 시장 뒤 그늘도… 한국에선 ‘화보’ 미국선 ‘피자 덤’ 취급 받는 CD
#1. 가수 박기영은 내년 라이브 앨범 ‘스튜디오 라이브’를 LP로만 낸다. CD를 아예 발매하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을 찾는 청취자들이 소장형 앨범으로 CD보다 LP를 선호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8집 ‘리:플레이’를 CD와 LP로 동시에 냈는데 LP가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최근 한국일보와 만난 박기영은 “앞으로 음반을 낸다면 CD 대신 LP로만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얼굴을 알린 가수 A씨도 지난 7월 정규 앨범을 온라인 음원사이트에만 공개했다. 역시 CD를 발매하지 않았다. 대부분 청취자가 음원사이트에서 음악을 듣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아이돌그룹 세븐틴은 지난 9월 3집 ‘언 오드’ CD를 다섯 가지 버전으로 냈다. 가수 사진이 프린트된 포토카드와 화보 등 CD 구성물을 달리해서다. 버전은 다르지만, 각 음반에 실린 노래는 같다. 같은 앨범을 여러 버전의 CD로 제작하는 이유는 팬들이 지갑을 더 열게 하기 위해서다. 세븐틴은 9월 ‘언 오드’ 음반을 총 79만6,134장 팔았다.
◇CD냐 LP냐 ‘동상이몽’
어떤 가수에게 CD는 ‘죽은 시장’이다. 사는 사람이 없을 거라 판단해 CD 발매를 하지 않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K팝 아이돌그룹은 정반대다. 그들의 CD 시장은 요즘 가장 뜨겁다.
음반 시장이 양극화되고 있다. 불균형은 극심해지는 추세다. K팝 아이돌이 아닌 가수는 CD보다 LP 발매에 눈독을 들이는 반면 아이돌은 CD 발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K팝이란 장르를 기준으로 음반 소비 행태가 극명하게 나뉜다. 음반 시장 양극화의 가장 큰 이유다. K팝 아이돌그룹 팬들은 CD 구매에 여전히 적극적이다. CD를 사면 가수의 사진이 새겨진 포토카드뿐 아니라 화보를 볼 수 있고, 팬 사인회 응모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돌그룹은 평균적으로 같은 앨범에 2~4종의 CD를 발매한다. CD의 전성시대였던 1990년대에도 없었던 다작 판매 전략이다. 반대로 발라드 음악을 부르거나 40대 이상인 가수들은 CD보다 LP 제작에 욕심을 내는 분위기다. CD보다 LP가 정서적으로 소장형 음반 상품 가치를 더 빛낼 수 있다고 믿는다. 데뷔한 지 20년을 훌쩍 넘은 발라드 가수가 소속된 기획사의 대표는 “세대와 상관없이 청취자 대부분은 음악을 음원사이트나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 듣기 마련”이라며 “결국 CD나 LP 모두 기념품인데, 아날로그 정서를 불러낼 수 있다는 측면에서 LP제작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취자의 장르별 음악 소비 습성을 고려해 매체 전략이 달라지는 것이다. K팝 아이돌은 대량 생산이 어려운 LP로 음반 전략을 짜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1~10월 CD 판매량 9년 새 최고”
디지털 음원 시대에 CD와 LP 판매량은 더 늘었다. 인터넷 접속의 시대가 소유의 갈증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 벌어진 이변이다. 1월 1일부터 10월 19일(1~42주)까지 국내에서 팔린 CD 판매량은 1,959만936장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팔린 1,675만8,487장보다 판매량이 17% 증가했다. 본보가 CD 판매량을 집계하는 한국음악콘텐츠협회에 의뢰해 지난 5년간 CD 판매량 추이를 조사해 본 결과다. 최근 5년 간 연간 CD 판매량은 2014년에 737만장, 2015년에 838만장, 2016년에 1,080만장, 2017년에 1,693만장이었다. 10월 19일까지를 기준으로 하면 올해 CD 판매량이 2010년대 들어 가장 높다. 방탄소년단 등의 활약으로 CD 시장이 커진 결과다.
LP 시장도 성장세다. LP 생산업체인 마장뮤직앤픽처스에 따르면 올해 국내 음악 시장에서 LP 판매량은 60만장을 넘어설 예정이다. 3년 전인 2016년 28만장(추정치)의 두 배를 넘어서는 수치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요즘 음원 차트에서 K팝 아이돌그룹이 유독 힘을 못 쓰고 있어 일부 K팝 팬덤에 ‘CD 구매에 더 힘을 쏟자’는 움직임이 포착된다”라며 “K팝의 영향력이 세져 당분간 CD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커진 CD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국내에선 화보 취급을 받는 CD가 미국에선 ‘묶음 상품용’으로 전락했다. 피자 등 음식 판매에 끼워 넣는 CD 판촉 전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지난 6월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CD가 피자 한 판에 끼워 팔기로 이뤄진 마케팅 현상 등을 언급하며 앨범으로서 CD 가치의 하락을 꼬집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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