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와 임직원에게 폭언한 사실이 드러나 ‘갑질’ 논란을 일으킨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자진 사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회장으로 선출한 회원사들의 입장, 사퇴에 따른 경영 공백 문제를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노동계를 중심으로 권 회장 사퇴 요구가 적지 않아 그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권 회장은 3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투협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숙고 끝에 남은 임기까지 협회장으로서 직무를 계속 수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자본시장과 금융시장 발전이라는 협회의 소임을 다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열과 성을 다하겠다”며 며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권 회장의 임기는 2021년 2월3일까지다. 앞서 그는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거취에 대해 각계각층 많은 분들의 의견을 구하고 따르겠다”고 했다.
권 회장은 이번 결정의 이유로 금투협회장이 선출직이란 점을 꼽았다. 그는 “개인적 사유만으로 거취를 결정하기에는 회원사로부터 선출직 회장에게 부여된 임무와 권한의 무게가 너무 크고, 경영 공백 시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도 많다”며 “현재 진행 중인 사안들을 우선 마무리하는 것이 회장으로서 보다 책임감 있는 선택이라는 의견을 받았다”고 말했다.
협회 이사회도 회장 직위 유지에 힘을 실었다. 이날 오전 열린 이사회에 참석해 자신의 거취를 논의한 권 회장은 “이사회에서 ‘협회가 금융투자업계가 가야 하는 방향대로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며 계속 직무를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며 “이와 함께 ‘다시는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줬다”고 전했다.
권 회장은 자신의 폭언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보는지를 묻는 질문에 “관련 법에 저촉된다면 당연히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답했다.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등은 고용노동부 진정이나 고소ㆍ고발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태의 피해 임직원이나 금투협 노동조합은 아직까지 권 회장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권 회장에 대한 사퇴 압박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금투협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사무금융노조는 지난 24일 “권 회장을 일벌백계하지 않으면 기껏 마련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며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노조는 “권 회장이 즉시 사퇴하지 않으면 모든 법적 대응과 함께 권 회장 퇴진을 위한 금융노동자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권 회장의 갑질 논란은 지난 18일 그가 운전기사와 협회 임직원 등을 상대로 폭언한 녹음 파일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한 녹음 파일에서 권 회장은 운전기사에게 “오늘 새벽 3시까지 술 먹으니까 각오하고 오라”고 했다가 기사가 “아이 생일”이라고 머뭇대자 “미리 얘기해야지 바보같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을 못 받잖아”라고 몰아붙였다. 다른 파일에는 권 회장이 직원에게 “너 뭐 잘못했니 얘한테? 너 얘한테 여자를 XXX”이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 홍보 담당 직원에게 “기자 애들 쥐어 패버려”라며 공격적 언론 대응을 주문한 발언이 담겨 있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