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제조 강국이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는 전세계 시장을 70% 가까이 점유하고 가전, 자동차, 조선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제조 산업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여 다양한 소재와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따라서 소재ㆍ부품ㆍ장비, 즉 소부장은 제조 산업의 필수 요소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필수요소인 소부장을 적잖이 일본에 의존해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가 많은 제품들을 수출해서 벌어들이는 외화의 상당 부분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형태를 띠게 되었다. 우리도 소부장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그러한 국제적 분업의 형태가 효율성이 높았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일본이 우리나라를 백색국가에서 배제함에 따라 특별한 인증(ICP)을 받지 않은 일본 기업은 개별 허가를 받지 못한 품목을 우리나라에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개별허가 대상이 된 품목이 잘 알려진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세 가지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의 조치가 억울한 측면이 있으나 보호무역주의와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이 시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우선 수입 다변화가 가능한 품목은 바로 대체품을 찾아서 수요 기업과 연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입 다변화가 어렵고 일본과 같은 특정 국가에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라면 자체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 경우 기술을 고도화할 기업 또는 대학, 연구소에 대한 지원과 함께 그 기술의 수요 기업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수입 다변화도 어렵고 우리나라의 기술도 부족한 경우에는 보다 긴 호흡의 연구를 통하여 제대로 된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제조 산업의 강국으로서 그 열매만 바라보느라 막상 뿌리에 해당하는 소부장 산업에 대해서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우리나라에 위기로 다가오는 듯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부장 산업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하고 대학, 연구소, 민간 기업의 연결고리를 한층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정부는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자 한다.
우선 국가연구 개발 역량과 인프라를 결집시켜 나갈 것이다. 금번 수출 규제 사태와 같은 긴급 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하고, 핵심 품목ㆍ기술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3N, 즉 국가연구실(N-LAB), 국가연구시설(N-Facility), 국가연구협의체(N-TEAM)를 지정ㆍ운영한다. 참여 희망 기관으로부터 신청을 받아 즉시 운영이 가능한 출연(연) 중심의 국가 연구실과 반도체ㆍ나노분야의 국가 연구시설을 11월내에 시범 지정하고, 향후 대학ㆍ전문(연) 등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다.
또한 현장 수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 제도 혁신을 추진한다. 먼저 시급히 대응이 필요한 핵심품목 관련 R&D 예비 타당성 조사는 정책적 중요도의 평가 비중을 확대하고, 경제성 평가를 비용효과(E/C) 분석으로 대체하는 등 R&D 예타 제도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아울러, 소재ㆍ부품ㆍ장비 분야 사업은 특정 평가를 통해 사업 성과를 점검 후 문제점을 개선해 나감으로써 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소부장 관련 과감한 투자를 위한 재원을 적극적으로 확대ㆍ집행해 나가겠다. 이를 위해 올해 대비 대폭 증액 편성한 2020년 정부 연구개발 예산안이 최종 확정될 수 있도록 국회의 지원과 협조를 구해나갈 계획이다. 구성이 완료되어 11월초 첫 회의를 앞둔 ‘소부장 기술특별위원회’를 통해 소중한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예산 집행과 성과 관리를 철저히 해 나갈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연구자들이 연구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기초ㆍ원천 연구 성과가 사업으로 연결되도록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다보면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뿌리 깊은 소부장 기술 역량 확보”라는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 확신한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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