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라크전에서 부상당해 훈장을 받은 미국 육군 중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훈장까지 받은 애국자를 폄훼하느냐”는 동조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측은 이 중령이 구소련 출신이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때아닌 ‘애국자’ 논란의 주인공은 미국 육군 소속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 그는 3세에 가족과 구소련을 도망쳐 나온 이민자 출신으로 이라크전에서 폭탄 공격을 받고 부상당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이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파견 근무 중인 빈드먼 중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직접 들은 당국자 중 처음으로 29일(현지시간) 의회 증언에 나섰다.
이날 하원에서 진행된 비공개 증언에서는 공화당 의원들이 빈드먼 중령에게 애초 우크라이나 의혹을 제기한 내부고발자 신원을 알아내려는 듯한 질의를 계속하다가 민주당 의원들과 고성을 지르며 맞섰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CNN은 빈드먼 중령에게 내부고발자에 대한 질의가 집중되자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이 제지했고 공화당 의원들이 반발하면서 결국 고성 대치로 이어졌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빈드먼 중령은 내부고발자가 누군지 모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빈드먼 중령이 의회에 출석하기 전날인 28일, 트럼프 대통령 지지 성향인 폭스뉴스가 빈드먼 중령을 문제 삼고 나섰다. 폭스뉴스 진행자 로라 잉그러햄과 패널들은 “빈드먼 중령이 미국보다 우크라이나의 이해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것 같다”며 스파이일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은 발언을 내놨다. CNN에서도 빈드먼 중령을 공격하는 발언이 나와 논란이 커졌다. 방송에 출연한 숀 더피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빈드먼 중령이 미국의 정책을 염려한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고국에 친밀함을 갖는 법이다”라고 주장해 진행자의 반발을 불렀다.
잇따른 빈드먼 중령 폄훼 발언에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도를 넘는 주장이라는 비난이 제기됐다. 론 카인드(민주) 하원의원은 “우리를 위해 총탄을 맞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중령의 애국심을 문제 삼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라면, 음, 행운을 빈다. 맙소사”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로이 블런트(공화) 상원의원 역시 “빈드먼 중령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면서 빈드먼 중령을 깎아내리는 대열에 가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화당 전 대선 후보였던 밋 롬니 상원의원도 “그는 퍼플하트 훈장을 받은 사람이고 그의 애국심을 공격하는 건 실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에 글을 올려 빈드먼 중령을 포함,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전현직 당국자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패한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의 전화통화가 ‘트럼프를 절대 지지하지 않는’ 오늘의 증인(빈드먼)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같은 통화를 들은 것 맞나? 불가능하다! 마녀사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빈드먼 중령을 겨냥한 발언이다.
한편 이날 미국 하원은 주중 투표할 결의안을 발표했다. 하원은 탄핵 조사를 다음 단계로 진행하는 절차적 세부사항을 제시하는 결의안을 31일 표결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하원 정보위원회가 공청회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하원 법사위원회가 하원에 그러한 결의, 탄핵안 또는 기타 권고 사항을 보고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의회의 요청에 협조하는 것을 불법적으로 거부하면 의장은 대통령측 변호사의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도 결의안에 담겼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