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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82년생 김지영’ 정치인의 관람을 권한다

입력
2019.10.30 18:3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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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 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2019-10-29(한국일보)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2019-10-29(한국일보)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봤다. 평일 낮 시간에 봤는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극장을 절반 이상 채웠다. 개봉 전부터 ‘남녀 성대결’ ‘별점 테러’ 등 논란이 많았던 영화여서 관객 대부분이 여성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남녀가 함께 온 경우도 많았고, 캐주얼 정장 차림의 남성 혼자 와 극장이 어두워지기 전부터 자리를 잡고 앉은 경우도 많이 보였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 모습이었다. 예닐곱 명의 노인들이 보였는데, 부부가 함께 온 것은 물론 혼자 앉아 영화를 끝까지 집중해서 보고 남몰래 눈물을 찍어내던 남자 어르신 모습은 이채로웠다. 함께 영화를 본 아내와 나 역시 보는 내내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느라 고생했다.

영화는 의외로 소소하고 잔잔하다.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지도, 주인공의 아픔을 과장되게 표현하지도 않는다. 지영(정유미)은 장난감을 치우고, 젖병과 속옷을 삶고, 빨래를 하고 식사를 차렸다가 치우기를 반복한다. 단조롭게 흘러가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지영은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누군가는 이런 장면을 보고 ‘평화롭고 부러운’ 일상의 장면이라고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되풀이되는 가사노동과 육아에 갇혀 ‘벽을 지나면 다시 나타나는 벽’과 마주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또 지영과 동료들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리천장에 가로막혀 승진, 재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현실이 그대로 나열된다.

영화가 묘사하는 현실은 허구라기보단 오히려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지영은 어렵게 취업한 직장이지만 출산 후 고민 끝에 퇴사하고, 재취업을 희망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영화 속 지영의 시어머니는 지영이 일하는 대신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곤 지영에게 “여자가 나가서 벌면 얼마나 번다고…”라고 말한다. 실제 남녀 임금격차는 2018년 기준으로 여성이 남성의 66.6% 수준이다. 한 팩트체크 매체 기자는 “영화 내용은 팩트에 기반해서 나온 가공의 이야기”라며 “노동사회연구소가 2017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82년생 여성의 대부분은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동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영화가 지적하는 현실은 여성에게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 남녀 모두, 우리나라의 미래와도 연결된 이야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28일 보건복지부와 함께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양육 부담 해소가 저출산, 경제활동 인구 감소 등을 해소할 키워드라고 지적했다. OECD는 ‘한국은 향후 20여년간 15~47세 총 노동인력 250만명이 감소할 것’이라며 ‘유연근무제 활성화, 육아휴직 급여율 인상,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동 수당 지급 등 가족을 위한 정책 확대’를 해법으로 제안했다.

이쯤 되면 정치인이 나서야 한다. 영화에서 지적하는 것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이고, 그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개인들의 모습이다. 50ㆍ60대 정치인이 모르는 20ㆍ30대 유권자들의 삶이 이 영화에 녹아 있다. 정치인은 흔히 영화 단체 관람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곤 했다. 영화 ‘기생충’을 단체 관람하며 빈부격차를 해소하려는 정책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고, 영화 ‘봉오동 전투’를 단체 관람하며 극일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영화 ‘연평해전’이나 영화 ‘인천상륙작전’ 상영회를 아예 국회에서 열기도 했다. 이번에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단체 관람하고, 여성의 사회진출과 양육 정책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과 정책 수립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나라 20ㆍ30대 유권자의 비율은 35%가 넘는다.

강희경 영상콘텐츠팀장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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