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권력을 되찾은 아르헨티나 좌파 정부의 진짜 시험대는 이제부터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무장한 새 정부가 국가부도 위기를 극복할, 얼마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금융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느냐가 정권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권은 지출 확대를 약속한 선거 공약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엄격한 긴축 요구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떠안았다”고 평가했다.
일단 시장의 반응은 차분했다. 이날 페소화 가치는 전날보다 0.65% 올랐고,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도 전 거래일보다 3.90% 하락 마감해 비교적 선방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도 급속한 자본 유출을 우려해 개인의 달러 월 매입 한도를 종전 1만달러에서 200달러로 낮췄다. 물론 속단은 이르다. 8월 예비선거였을 뿐인데도 페르난데스 후보의 승리가 예상되자 주가는 전거래일 대비 38.0%나 폭락했다. 그만큼 금융시장이 좌파 정권의 출범을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당선인은 만신창이 상태의 경제를 물려 받았다. 아르헨티나의 단기 외채는 1,000억달러가 넘고 지난해 IMF로부터 57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도 신청했다. 구제금융의 전제 조건은 긴축. 당연히 복지지출 증가 등 재정확대를 정체성으로 하는 페론주의와 배치돼 IMF와 충돌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실제 페르난데스 당선인은 “성장과 소비를 촉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아르헨티나의 과거 전력도 IMF가 반짝 긴장하는 이유이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역대 최대로 기록된 1,000억달러의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하는 등 디폴트 경험이 8차례나 된다. 또 IMF는 아르헨티나에 이미 440억달러를 지급했는데, 기관 총대출의 절반에 육박한다. 페르난데스 정권이나 IMF 둘 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지 않으면 공멸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관건은 양측의 협상 카드이다. 페르난데스 정권은 부채탕감과 같은 극단적 방법은 쓰지 않겠지만 국민을 달래기 위해 IMF에 상환시기 연장을 통한 재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점쳐진다. 돈 갚는 기간을 최대한 늘려 IMF의 긴축 압력을 상쇄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면 IMF는 노동시장 개편과 연금시스템 점검 등 조건을 걸고 추가 자금 집행 여부를 저울질할 전망이다.
진짜 변수는 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전 대통령의 입김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조 페론주의자 크리스티나가 온건파인 페르난데스 당선인을 흔들면서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시장이 급격히 요동칠 수 있다는 얘기다. WSJ는 “돈 없는 포퓰리즘은 불가능하다”며 “페르난데스가 짧은 시간 안에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려면 아무런 자원 없이 정책을 시도하거나 외부금융에 접근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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