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찾은 이규항 전 KBS 아나운서가 대웅전 앞에서 환희 웃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올해 나이 20세, 약관의 신예 이만기 장사가 초대 천하장사에 올랐습니다!”

1983년 4월 17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1회 천하장사 대회 중계는 KBS 1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온국민이 열광했던 천하장사 결승전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바로 이규항(81)씨다. 그는 1961년 KBS에 입사해 1997년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정확한 국어 구사와 유려한 말솜씨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민속씨름대회는 이씨의 아이디어로 탄생됐다. 그는 “1970년부터 KBS배 씨름대회를 중계하면서 씨름이 실내 스포츠로 경쟁력이 있음을 확인하고 씨름인 김태성씨와 함께 씨름협회에 민속씨름을 개최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며 “초대 천하장사를 지낸 이만기 선수는 지금 생각해도 전무후무한 선수”라고 회고했다.

씨름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야구전문 캐스터로도 명성을 날렸다. 7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는 물론 1982년 프로야구 출범하자 군더더기 없는 정확하고 깔끔한 중계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야구 이론에도 해박해 1977년 국내 최초로 출간한 야구 번역서인 ‘미국야구’는 야구인 이광환씨가 제주도에 세운 ‘야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작고한 최동원 선수가 1981년 대륙간컵 대회에 출전했을 때 투수 마운드가 아닌 2루에서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달고 연습투구를 할 정도로 연습벌레임을 확인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될 것임을 확신하기도 했다.

1968년에는 ‘네 잎 크로바’라는 노래로 당시 문화공보가 주관했던 무궁화대상에서 남자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가수로서의 재능을 인정 받은 적도 있다.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가수의 길을 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는 아나운서의 길을 선택했다. 두 번이나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한 것이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1958년 고려대 국문과 2학년 시절 4학년으로 학력을 속여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학력을 위장한 것이 들통 났고, 1961년 다시 아나운서 시험을 치러 아나운서의 길을 걸었다. 지금도 이씨의 아나운서 2회 합격은 KBS 아나운서실에서 전설로 남아있다.

 ◇병상에 만난 부처로 ‘0의 행복’ 깨달아 

남부러울 것 없이 그야말로 잘나가는 아나운서였던 그가 인생에 고비를 맞은 것은 1990년이다. 그 해 8월 방송사로부터 아나운서 대상을 받은 이씨는 연일 축하파티를 열었다. 학창시절 유도 등 운동으로 몸을 다져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이씨였지만 황소가 호박넝쿨에 쓰러지듯 술에 무릎을 꿇었다.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도중 심장에 극심한 고통을 느낀 이씨는 결국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았다. 9월 베이징 아시안게임 KBS 아나운서 단장으로 내정돼 있었지만 수술로 출국은 무산됐다.

일반병실에 입원해 회복 중이던 이씨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속에 스친 생각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아! 이것이 바로 ‘0의 행복’이구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회진시간이 돼 병실로 들어오던 담당의사가 이씨의 소리를 듣고 “수술 후유증인 것 같다”며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걱정했을 정도로 그의 행동은 기이했다. 이씨는 그러나 “아시안게임은 놓쳤지만 부처를 만나 ‘인생 2막’을 열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왜 ‘0의 행복’이란 사자후(師子吼)를 토했을까. 그는 자신의 마음자리를 플러스(+)와 마이너스(-) 그리고 ‘0’으로 해석했다. 병원에 실려와 수술을 받았을 때의 마음자리는 마이너스이다. 반대로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의 마음자리는 플러스였다. 0의 마음자리는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닌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이었다. 그는 “좋아하던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쁠 수 있구나, 이런 행복감을 맛본 후 부처가 보리수 아래서 깨닫고 발견한 ‘중도(中道)’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 때부터 이씨의 인생 2막, 불교공부가 시작됐다.

병상에서 부처의 매력에 빠진 그는 인생 2막을 부처의 삶과 깨달음을 공부하고 전파할 것임을 다짐했다. 1997년 KBS에서 정년퇴직 후 국내는 물론 인도, 네팔, 캄보디아. 중국, 일본 등의 사찰을 돌며 불교공부에 매진했다. 그는 “1998~2000년까지 위성TV에서 일본에서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 선수가 활약한 주니치 드래건스 경기를 매년 100경기 중계했다”며 “그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사찰을 돌아다닐 만큼 나에게 있어 부처는 각별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병상에서 체험한 경험이 부처가 출가 전과 후, 그리고 중도를 깨달았을 때와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속세에서 태자로 지내면서 부귀영화를 누렸을 때 부처의 마음자리는 플러스이고, 왕궁의 담을 뛰어 넘어 출가한 후 극단적인 고행수도를 했을 때의 마음자리는 마이너스라는 식이다. 그는 “부처가 양극단의 생활을 모두 경험한 후 중도의 깨달음을 통해 ‘고행무익’(苦行無益)을 선언할 수 있었다”며 “부처는 다른 인간들이 경험하지 못한 0(중도)이라는 제3의 마음자리를 깨달으셨기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부처의 매력에 빠진 이유는 스승인 조지훈 시인의 영향이 컸다. 이씨는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시절 조지훈 교수의 수업은 빠지지 않고 들었는데 말이 국문학이지 불교학을 배웠다”며 “은사인 조지훈 시인의 영향을 받아 불교공부를 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30년 불교공부 후 ‘부처님의 밥맛 출간’ 
이규항씨가 지난해 5월 출간한 ‘부처님의 밥맛’을 보이며 자신의 ‘인생 2막’은 부처를 만나 시작됐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이렇게 불교공부에 매진하다 세상에 선보인 책이 2008년 출간된 ‘0의 행복’이다. 병상에서 0의 행복을 깨닫고 인생 2막을 부처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한 지 약 30년 만인 일흔 살에 약속을 실천한 셈이다. 이 책은 2011년 12월 8일 일본어판이 출간됐고, 지난해 5월 8일 내용이 보강돼 ‘부처님의 밥맛’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그는 책에서 부처의 중도사상을 음식에 비유해 설명했다. 입맛을 자극하는 육류는 플러스 음식으로, 두부와 채소류 등은 마이너스 음식으로 분류했다. 물과 밥 그리고 차는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아닌 0의 자리 음식으로 설정했다. 물과 밥, 차를 0의 자리에 놓은 것은 이들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스승이 없었던 부처는 달지도(+) 쓰지도(-) 않은 구수한 밥맛(0의 맛)을 통해 중도라는 장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인들이 잘 걸리는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암 등은 잘못된 식생활 때문”이라며 “부처가 깨달은 중도는 어렵고 거창한 철학이 아닌 우리네 삶과 밀접한 생활철학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고 덧붙였다.

집필 도중 너무 힘이 들어 아내에게 “밥맛이나 0의 키워드는 달라이라마도 감히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달라이라마가 이 책을 읽으면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가 아내로부터 “제발 그런 말을 집밖에서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경고를 받았다는 이씨는 자신을 ‘늦깎이 불자’ ‘돈키호테 불자’로 칭한다. 책을 내기 위해 수많은 사찰과 국가를 다니면서 눈으로 확인하고 스님들과 석학들에게 배운 불교지식을 정리해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다며 불교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불상들과 달리 국보 83호와 일본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의 엄지발가락이 벌어지면서 뒤로 젖혀진 이유가 부처가 중도를 깨달은 순간을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등 나름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며 “이를 모든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책 출간 이후 조계사, 봉은사 등 사찰에서 특강을 진행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지금도 서울 강남에 있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1주일에 3시간 정도 강의를 하는 등 건강에 문제가 없다”며 “부처의 중도사상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항씨는 “부처가 깨달은 중도는 어렵고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생활철학”이라며 “남은 인생 동안 부처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해 인생 2막이 끝날 때 커튼콜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젊은이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부처가 태어나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본 뒤 북쪽을 향해 일곱 걸은 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외친 것은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귀하고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의 생명들이 모두 절대적 존재라는 생명존엄을 강조한 것”이라며 “우리 젊은이들도 ‘천상천하 YOUR 독(獨)존(ZONE)’을 만들어 남이 아닌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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