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통일전망대 방문까지 불허… “美, 유엔사 통해 남북관계 속도 통제 의도”
최근 유엔군사령부의 기능 재조정 움직임은 비군사적 영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군사분계선(MDL)을 포함한 비무장지대(DMZ) 관할권을 토대로 남북협력 사업에 잇따라 제동을 건 사례다.
지난해 8월 남북은 경의선 철도 공동조사를 위해 MDL 북측 구간을 공동 조사하기로 했지만, 유엔사가 남측 인원과 열차의 MDL 통행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올해 초 북한에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지원하는 사업 또한 유엔사가 약을 실은 트럭의 MDL 통과에 난색을 표하며 제동이 걸렸다. 유엔사는 6월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독일에서 온 방문단과 함께 고성 통일전망대를 찾는 일정도 불허했다. 당시 정부 내에선 ‘유엔사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엔사의 이러한 행보가 ‘월권’이라는 입장이다. 유엔사는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MDL을 포함한 남쪽의 DMZ를 관할한다. MDL을 통한 남북 간 이동은 유엔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정전협정은 서문에서 ‘이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사가 비군사적 성격의 교류에 대해 가타부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21일 국정감사에서 “비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환경 조사나 문화재 조사, 감시초소(GP) 방문 등에 대한 허가권의 법적 근거가 조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유엔사의 권한을 문제 삼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며칠 뒤 유엔사는 김 장관의 발언을 전한 언론 보도에 대해 “2018년 이후 2,220여건의 DMZ 출입 신청을 받아 93% 이상을 승인했다”며 반박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정부 내에선 미국이 한미 워킹그룹과 유엔사를 통해 남북관계 ‘과속’을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이 있다”며 “결국 지금과 같은 틀 속에선 우리가 과감하게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없다는 판단에서 유엔사와의 교통정리에 나선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재 정부와 유엔사는 비군사적 목적의 DMZ 출입 허가권을 두고 협의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올 초 인도적 사안인 타미플루 지원까지 유엔사가 제동을 걸었을 때 정부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어야 했다”며 “북한은 최근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 방침을 밝히며 ‘이제 남북경협은 더 이상 없다’는 신호까지 보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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