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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족만 정상 가족인가요? 가족 구성권은 시민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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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가족만 정상 가족인가요? 가족 구성권은 시민의 권리”

입력
2019.10.29 04:40
수정
2019.10.29 11:1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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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준을 바꾸는 청년 개척자들]<3>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 가족입니다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당사자연대 ‘민달팽이유니온’에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모색 중인 김경서씨는 “‘정상, 정상’ 하지만 절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며 “한번쯤은 정상 가족을 때려부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와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청년 당사자연대 ‘민달팽이유니온’에서 다양한 가족구성권을 모색 중인 김경서씨는 “‘정상, 정상’ 하지만 절대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며 “한번쯤은 정상 가족을 때려부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우리나라 민법은 피로 연결된 관계, 결혼으로 맺어진 남녀의 결합만 ‘가족’이라고 한다. 비혼은 물론 1인 가구, 심지어 함께 살지 않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까지 엄연히 ‘새로운 가족(사회적 가족)’으로 삶을 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가족은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게 아니라 시민이 자유롭게 구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요구하는 강동희(26)ㆍ김경서(24)씨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두 사람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실존하는 모든 관계들이 가족으로 존중 받을 수 있도록, 오늘을 사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민권으로 가족구성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 한 해 서울시 청년정책네트워크(청정넷)에서 가족구성권과 사회적약자의 주거권 논의를 주도해온 두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실제 삶과 맞닿은 문제다.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는데 30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소득인정액을 부모와 함께 잡아서 당장 수중에 돈이 한푼 없어도 아무런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없더라고요.(김경서)” ‘비혼 퀴어 여성 함께/살기 반달’ 모임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김씨의 독립은 ‘4인 정상 가족’을 전제로 하는 기존 법ㆍ제도에 가로막혔다. 정상가족 바깥으로 비껴나자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가 박탈되는 순간이었다.

강씨의 문제의식 역시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가장 친밀한 관계의 사람이 밤중에 응급실에 실려갔는데도 마음 졸이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 친구가 정신을 차려 의사를 만나기 전까지 왜 아픈지도 모른 채 말이죠.” 가족보다 더 가까이에서 서로를 돌봐온 생활의 동반자였지만 법이 정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동성끼리 결혼은 법적으로 금지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이미 저는 결혼도 못하고, 신혼부부 주택 지원도 못 받죠. 파트너가 아파도 병원에 같이 못 가고, 죽으면 시신 수습도 못해요.”

성소수자인 강동희씨는 “처음에는 나만의 이슈라는 생각에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고민했지만 청정넷 활동을 하면서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며 “가족구성원이라는 언어만 없었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가족 형태로 살아왔고, 갈급함을 갖고 있더라”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성소수자인 강동희씨는 “처음에는 나만의 이슈라는 생각에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에 대해 고민했지만 청정넷 활동을 하면서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며 “가족구성원이라는 언어만 없었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가족 형태로 살아왔고, 갈급함을 갖고 있더라”고 말했다. 서재훈 기자

함께 사는 방식은 시대마다 변해왔다. 실제로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인 가족은 2045년 우리나라 전체 가족의 16%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도 나온 터다. 미래를 살아갈 청년 세대일수록 전통적인 가족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과 얽힌 1인 가구, 비혼, 성소수자 등 이슈도 더욱 첨예하게 떠오르고 있다.

청년들은 다양한 청년의 삶 양태를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틀 안으로 우겨 넣으려는 시도나 결혼의 전 단계로써의 임시방편, 미완의 상태쯤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반발하고 있다. “청년주택, 그 이전에는 행복주택이 있었죠. 다섯 걸음이면 끝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삶을 오랫동안 영유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정책입안자도 알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가족으로 가는 사다리라고 생각하니까 일단 그런 데서라도 살라는 거거든요. 1인가구도 가족입니다.(김경서)”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담지 못하는 제도로 인해 생기는 차별과 공백을 이제라도 메워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청정넷 소속 청년들은 사회적 가족과 가족구성권 담론 확산, 관련 조례 제정을 위한 공론장을 만드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권수정 서울시의원도 사회적 가족을 지원하는 조례 발의를 준비 중이다. 프랑스는 이미 1999년 결혼을 하지 않아도, 이성이든 동성이든 함께 생활하는 이들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시민연대계약(팍스ㆍPACS)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서도 2014년 생활동반자법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이젠 가족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어야 할 때입니다. 가족을 결혼, 출산으로 이어지는 기능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인구 정책 관점에서 벗어나야 해요. 돌이킬 수 없죠.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강동희)”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N포, 무기력, 정치무관심, 각자도생… 우리 사회가 청년을 규정하는, 익숙한 수식들이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빛을 내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쉽게 지워지고 만다. 한국일보가 더 많은 변화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나선 청년들의 목소리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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