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습상황 50분 가량 설명하며 자화자찬… 작전 지나치게 묘사 ‘뒷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국가(IS)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제거에 성공하면서 적극적인 업적 띄우기에 나섰다. 시리아 철군 논란 및 민주당의 탄핵 공세로 수세에 몰렸던 상황에서 모처럼 외교안보 분야의 굵직한 성과를 내 정국 반전의 계기로 삼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오전 9시20분(현지시간)부터 50분가량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알바그다디 사살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자화자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작전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개처럼 죽었다” “도망치고 울면서 겁쟁이처럼 죽었다” 등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살 순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알바그다디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체포한 최대 거물”이라며 “가장 거물이면서 가장 사악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 2011년 5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의식하며 그 보다 더 대단한 인물을 제거했다고 부각시킨 것이다. 그는 “오사마 빈라덴은 세계무역센터로 거물이 됐지만 이 사람(알바그다디)은 국가라고 지칭한 전체를 건설했고 이를 다시 재건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알바그다디와 빈라덴에 대해 동일한 액수의 현상금(2,500만 달러)을 내걸고 추적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취임하는 날부터 나는 ‘알바그다디는 어디 있나, 알바그다디를 원한다’고 말해 왔다”며 자신의 끈질긴 리더십이 성공을 거뒀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그간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로 IS 부활을 방치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지만 IS 격퇴전에 소홀하지 않았다는 반박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을 비판해 왔던 공화당 의원들도 반색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역공에 나서는 분위기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 의원은 “알바그다디 사살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게임 체인저”라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 측근인 마이크 허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언론과 민주당이 IS 수괴 사살을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다루고 있다”고 화살을 돌렸다. 친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는 “알바그다디 사살은 민주당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었고 시리아 철군에 대한 비판을 무색케 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작전 상황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러시아, 쿠르드, 터키 등 다른 나라의 역할을 상세하게 거론해 뒷말도 적지 않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보 업무를 맡았던 사만사 비노그라드는 CNN에 “이번 작전이 분명 중요한 성과지만, 대테러작전의 관점에서 보면 대통령이 전례 없이 구체적으로 설명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빈라덴 사살을 전한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받지 않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했던 것과 대조적이라면서 “민주당의 탄핵 조사를 덮기 위한 일요일 오전 정치 토크쇼 같았다”고 비꼬았다. WP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에는 이번 작전을 알리지 않고 러시아와는 공유한 점을 들어 “통상 현직 대통령은 군사적으로 민감한 작전을 의회 지도부에 통보해 왔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보다 러시아를 더 신뢰한다는 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빈라덴 사살 작전으로 지지율이 6%포인트나 올랐으나 금세 제자리로 돌아와 반짝 상승에 그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역사는 군사 작전의 승리에 따른 정치적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날 저녁에 워싱턴 내셔널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간 월드시리즈 5차전이 열린 워싱턴 내셔널 파크를 찾은 트럼프 대통령은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받았다. 관중석 일부 구역에서는 “그를 감옥에 보내라”는 야유가 나왔다고 CNN 방송이 전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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