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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만원, 하는 얘기에 끌려요”… 이토록 솔직한 속물들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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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 만원, 하는 얘기에 끌려요”… 이토록 솔직한 속물들의 자화상

입력
2019.10.29 04:40
수정
2019.10.29 09:4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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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작으로 화제 일으킨 장류진 작가 첫 소설집 내

소설가 장류진. 작가 제공 ⓒ임효정
소설가 장류진. 작가 제공 ⓒ임효정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잘 살겠습니다’)

이렇게까지 솔직한 ‘속물들’의 이야기를 본 적 있나 싶다. 그런데 그게,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얼굴이라 뜨끔하면서도 저릿하다. 장류진(33)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출근길 뜨거운 아메리카노(2,000원)와 아이스아메리카노(4,500원)를 두고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등장한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허황된 낭만 대신 특유의 현실감각으로 중무장한 이 시대의 ‘미생’들이다.

지난해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한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등단작이 출판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서버다운과 40만 조회수라는 기록을 세운 바로 그 작가다. 1년간 청탁이 쏟아졌고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데뷔 1년만에 첫 책이 묶였다. ‘놀라운 신예’라는 타이틀을 달고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고 있는 장 작가를 25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1년 동안 엄청 ‘쫄리는’ 시간을 보냈어요. 청탁이 오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했거든요. 등단도 힘들지만, 그 이후에 청탁 받는 게 더 힘들다는 얘기를 들어왔던 터라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죠. 그렇지만 오랫동안 소설을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어요.”

1년 전 ‘화제의 소설가’로 언론 인터뷰를 할 당시만 해도 “회사는 절대 그만두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은 얼마 전 회사를 그만뒀다. 아직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다. “1년간은 어찌어찌 회사를 다니며 썼지만,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계속 할 수는 없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회사를 다닌 게 올해로 딱 10년이에요. 퇴사를 하고 놀겠다는 게 아니라 작가로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거니까, 전직이라고 생각하려구요(웃음).”

더 이상 ‘직장인 소설가’는 아니게 됐지만, 데뷔작은 실제 직장생활 경험을 십분 살려 쓴 얘기였다.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된 직장인을 다뤘다. 카드 포인트를 비롯해 축의금, 조의금, 가사도우미 임금, 음원 저작권료, 학자금, 상여금, 특근수당, 실비보험 등 책에는 각종 명분으로 환산된 ‘돈’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자본주의 현실을 정확하게 간파한 소설이구나 싶은데, 정작 장 작가는 “내가 돈 얘기를 이렇게나 일관되게 했다는 걸 책으로 엮고 나서 알았다”며 웃었다. “새삼 깨달았죠. 아, 나는 정말 현실적인 사람이구나. 저는 천원, 만원 하는 얘기가 좋아요. 사실 세상이 천 원, 이천 원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데뷔작의 흥행을 견인한 이는 “마치 내 얘기 같다”며 소설을 열심히 SNS로 퍼 나른 직장인이었다. 장 작가가 그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를 정확히 포착했다는 얘기다. 이번 책의 등장인물 역시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의 직장인들이다. 장 작가는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는 ‘체념’ 같다”고 했다. “저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지 않아요. 오늘 당장의 작은 기쁨, ‘소확행’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는 이유죠. 10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이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어요. 그러기엔, 지금의 젊은이들은 너무나 약자가 돼버렸죠.”

환호만큼이나 악평도 만만찮았다. 오랫동안 한국문학이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성찰을 담고 있지 않다고들 했다. 잘 읽히는 소설이 흔히 맞닥뜨리는 ‘쉽고 가볍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장 작가는 “내 소설이 ‘문학답지 못하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며 되물었다. “저는 문학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배웠거든요. 인디신, 힙합신처럼 ‘신(Sceneㆍ활동 영역)’이란 말을 좋아해요. 문학도 신으로 본다면 신의 경계가 흐려지거나 넓어지는 게 오히려 전체를 위해 좋은 게 아닐까요.”

책의 가장 첫머리에 실린 ‘잘 살겠습니다’는 결혼을 앞둔 29세 여성이자 5년 차 회사원인 ‘나’와 동료인 빛나 언니의 이야기다. 언니는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사회 상규를 터득하지 못한, 눈치와 센스가 한참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언니를 보며 답답해하면서도, 끝내는 “언니가 잘 살 수 있을까. 부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라고 바란다. 냉혹한 현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와중에도 서로의 생존을 기원하며 ‘잘 살아보자’고 작가는 말한다. 부디 잘 살아남아서, 서로 오래 볼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신예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을 수 있기를, 마찬가지로 응원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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