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대 교수이자 ‘한국 대표 프로파일러’로 명성을 쌓아 가던 표창원은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사흘 앞두고 돌연 블로그에 ‘교수직을 사임하며’란 글과 함께 사직서를 올렸다.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은 글을 쓰며 자유롭게 의사표시를 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터진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을 비판하는 의견을 편하게 밝히고 싶은데, 때가 때인지라 자칫 정치적 편향성을 오해받아 경찰대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5년 말 19대 대선 출마를 결심하고 영입한 ‘1호 인사’가 됐다.
□ 이듬해 4월 20대 총선에서 야당세가 강한 경기 용인(정)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한 그는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예상됐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논리와 투지를 겸비한 의정활동 성적도 상위권이었다. 그런 그가 지난주 “좀비 같은 사상 최악의 20대 국회에 책임을 지고 불출마의 방식으로 참회하겠다”고 깜짝 선언을 했다.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으면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는데, ‘조국 정국’을 거치며 정의ㆍ공정 기준에 ‘실망했다’는 말을 수차례 들은 만큼 구차한 변명보다 총체적 책임을 앞세우겠다는 것이다.
□ 아쉽게도 선수는 같은 당 ‘전략통’ 이철희 의원에게 빼앗겼다. 이 의원은 ‘모질고 매정한 66일간의 조국 정국’이 일단락된 다음날인 15일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정치는 국민까지 패자로 만드는 공동체의 해악”이라며 먼저 불출마를 천명했다. 또 “더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대통령 뒤에 숨기만 하는 노쇠하고 낡은 리더십이 문제”라며 단일대오만 중시한 지도부에 일침을 가했다
□ 불출마 선언 이상으로 눈길을 끈 것은 당 지도부의 침묵 속에 나온 여야 의원들의 애정어린 만류다. TK가 본거지인 민주당 비례대표 김현권 의원은 “정치는 국회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구성 자체를 바꿔야 가능하다”며 “두 분 다 TK로 와서 사활을 걸고 싸워 보자”고 권했다.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은 “정치가 부끄럽다고 혼자 도중하차하면 새로운 사람들이 정치할 길도 막힌다”며 “그나마 성찰할 줄 알고 영혼이 자유로운 이철희가 노는 꼴을 볼 수 없다”고 소매를 붙잡았다. ‘이해찬 책임론’까지 거론한 두 사람이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다. 이들이 사는 법은 한국 정치를 살릴지도 모른다.
이유식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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