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면(88) 할머니가 26일 별세했다. 일본 전법기업 상대 1ㆍ2심 소송에서 이기고도 배상이나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할머니가 이날 0시 20분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13세였던 1944년 4월 국민학교 교장을 통해 ‘일본 후지코시 공장에 가면 중학교와 전문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의 통지서를 받고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후지코시 도야마 공장에서 기다렸던 것은 강도 높은 강제 노역이었다.
이 할머니는 후지코시 공장에서 일요일을 빼고 매일 10~12시간씩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 선반 같은 큰 공작기계로 쇠를 깎거나 자르는 위험한 작업을 해야 했다. 감시와 통제는 일상이었다.
약속 받은 학교 교육은 물론 일을 하다 다쳐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임금도 지급되지 않았다. 이 할머니와 함께 후지코시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는 여성 1,090명에 남성 540명 등 1,600명이 넘었다. 후지코시는 여성 징용공 수로 최대 규모의 전범기업이다.
이 할머니는 1945년 공장 증설 계획에 따라 한반도로 돌아왔고, 같은 해 8월 일본의 항복으로 태평양전쟁이 끝났다.
이후 70년이 흐른 2015년 5월 이 할머니는 한국 법원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후지코시가 이씨에게 한 행위는 당시 일본 정부의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며 1억원 지급 판결을 내렸다. 지난 1월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지하며 이 할머니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후지코시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고 대법원 확정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할머니의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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