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도 스펙" 씁쓸한 2030
대기업 과장인 이상은(34)씨는 지난해 서울 마포구의 20평대 아파트를 사려다 중간에 접었다. 집값이 이미 꽤 오른 터라 막상 계약할 때가 되니 혹시 ‘상투’ 잡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지금은 그때 집을 사지 않은 걸 뼈저리게 후회한다. 이씨는 “부모 도움을 받아 집을 산 동기들은 이미 나와 자산 격차가 많게는 10배씩 벌어졌을 것”이라며 “앞으로 집값이 더 뛸 거란 생각에 마음은 조급한데 대출받아도 집을 살 수 없으니 마음이 우울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에도 서울 집값이 떨어지긴커녕 계속 오르고 있어 매매시장 주축인 30대 사이서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이들은 생애 주기상 결혼 등으로 ‘내 집 마련’이 절실하지만, 정작 내 집 마련에 성공하는 이들은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는 일부에 국한된다. 서울의 높은 집값을 이유로 ‘탈(脫) 서울’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2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매입 건수는 7,096건으로 나타났다. 매입 건수를 연령대 별로 보면 30대(2,273건)가 가장 많았다. 전체의 32%로 아파트 구매자 3명 중 1명이 30대다. 30대가 주로 매입한 지역을 보면 성동구(151명·40%), 용산구(51명·34%), 마포구(101명·38%), 송파구(162명·32%) 등이다. 강남의 송파에다 마용성(마포ㆍ용산ㆍ성동)까지, 흔히 말하는 ‘요즘 좀 뜬다’는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옛 아파트라 해도 20평대 기준 아파트 가격이 8억~10억원 선이다. 은행 대출이 집값의 40~50% 선에 묶여 있는 걸 감안할 때 최소 4억원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30대에게 이런 자산이 있을 리 없으니 은행 대출만으로 집값을 감당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마포의 한 부동산 중개업계 관계자는 “마포, 용산, 성동구 일대 아파트는 옛 아파트라 해도 워낙 가격이 높다 보니 30대의 경우 대출과 부모에게 증여받은 돈을 합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종오(34)씨도 “30대가 청약에 당첨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데 대출도 어렵다 보니 집안 형편이 좋은 친구들은 부모에게 돈을 빌리거나 증여받아 아파트를 사더라”며 “부동산 시장에서도 엄연히 ‘스펙’이란 게 있는 거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아예 서울을 떠나는 30대도 점점 느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을 떠난 11만230명 중 30대(30~39세)가 4만2,521명으로 전 연령 통틀어 가장 많았다. 지난 5년간 서울을 등진 30대는 19만2,979명에 달한다. 서울을 탈출한 30대는 인근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 한 해 30대 유입 인구가 4만9,579명으로 전 연령대별 유입 인구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증가를 보였다. 30대가 서울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집은 사야겠는데 집값이 워낙 높아 아예 서울을 떠나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서울에서 거주지를 옮긴 전출자(서울내ㆍ외) 154만명 중 전출 이유를 ‘주택’으로 꼽은 이가 67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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