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통합 우승을 달성한 두산의 2019년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뚝심의 두산’은 정규시즌 선두를 달리던 SK에 9경기 차로 뒤져 힘들다고 생각했던 1위를 최종일에 뒤집어 역대 최다 경기 차 역전 우승을 완성하더니, 1위로 선착한 한국시리즈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2016년 이후 통산 6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지난해 SK와 한국시리즈에서 극도로 부진해 ‘미운 오리’가 된 내야수 오재일(33)과 외야수 박건우(29)는 1년 만에 ‘백조’로 변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 당시 16타수 2안타(타율 0.125)에 그쳤던 오재일은 올 가을 야구를 자신의 무대로 만들었다. 1차전에서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쳤고, 4차전에선 연장 10회초에 결승 2루타를 뽑아냈다.
4연승으로 시리즈가 마무리되면서 오재일은 시작과 끝을 자신의 손으로 장식했다. 당연히 시리즈 최우수선수(MVP) 영예도 오재일의 몫이었다. 오재일은 “4차전 마지막 타석 때 ‘MVP를 받을 운명인가’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바로 정신 차리고 타격에 집중했다”며 “결승타 후 ‘내가 받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작년 한국시리즈 21타수 1안타(타율 0.042)로 오재일보다 더 심한 ‘가을 악몽’을 겪은 박건우는 2차전에 끝내기 안타를 치고 속죄의 눈물을 흘렸다. 올해 1차전도 5타수 무안타에 그친 데다가 2차전 역시 3타수 무안타로 긴 침묵을 이어갔다. 하지만 8회 첫 안타로 포문을 열고, 9회 끝내기 안타로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폈다.
2차전 승리 후 그는 “나를 기용해 비판 받은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에게 미안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3차전엔 개인 첫 한국시리즈 홈런을 작렬했고, 7회말 무사 만루 수비 때 박동원의 외야 타구를 잡은 뒤 어깨 근육이 부을 정도로 홈에 강하게 던져 실점을 막았다. 4차전 도중 어깨 통증 여파로 교체된 박건우는 자신의 부상과 우승을 맞바꿨다.
시즌 내내 팀에 큰 힘을 보태지 못한 주장 오재원(34)과 고참 투수 배영수(38)의 반전은 더욱 극적이었다. 오재원은 정규시즌 동안 2007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1할대 타율(0.164)을 기록했다. 2013년부터 이어진 100경기 이상 출전도 올해 98경기로 끊겼다. 한국시리즈 역시 그의 임무는 대수비 또는 대주자였다. 1, 2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오재원은 더그아웃에 들어오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할 때 ‘5만원 줄 테니 나랑 바꾸자’고 할 정도로 출전 의지를 드러냈다.
마침내 2차전 9회말에 대타 출전해 끝내기의 발판을 놓는 2루타를 친 오재원은 3, 4차전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찼고, 4차전에서 5타수 3안타 3타점에 수 차례 호수비로 데일리 MVP를 받았다.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는 그는 “올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우승”이라며 “많이 힘들었지만 버티고, 버텼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하마터면 한국시리즈에서 못 볼 뻔 했던 현역 최다승(138) 투수 배영수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마운드에서 극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시리즈 동안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면서 패전조로 구분된 그에게 등판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11-9로 앞선 4차전 연장 10회말 1사 후 김태형 두산 감독이 마운드 방문 횟수를 착각하고 마무리 이용찬의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파울라인을 넘어 페어 지역에 들어가면서 어쩔 수 없이 투수를 교체해야만 했다.
때문에 9회말부터 불펜에서 몸을 푼 배영수가 공을 넘겨 받았다.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2개가 남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배영수는 ‘홈런왕’ 박병호를 삼진, 외국인 타자 제리 샌즈를 투수 땅볼로 처리하고 우승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는 ‘헹가래 투수’가 됐다. 한국시리즈 등판 신기록(25경기)과 최고령 세이브 신기록(38세5개월22일)를 작성한 배영수는 “(감독 실수로 등판해 경기를 끝내는 것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일 아닌가. 정말 하늘이 ‘고생 많았다’며 선물 준 거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가을의 기적’을 쓴 두산은 이제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다. 정규시즌 1위로 KBO리그 규정에 따라 포스트시즌 배당금의 20%를 먼저 받고, 한국시리즈 우승 배당금으로 나머지 금액의 50%를 추가로 가져간다. 올해 포스트시즌 입장 수입은 약 88억원이다.
KBO 사무국은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데 사용한 제반 경비(약 49%)를 제외한 금액을 두산을 비롯한 포스트시즌 출전 5개 팀에 일정 비율에 따라 분배하는데, 계산하면 두산은 제반 경비를 뺀 44억9,000만원의 20%인 9억원 가량을 정규리그 1위 상금으로 수령한다. 또 이 액수를 뺀 금액의 절반인 17억9,500만원 정도를 한국시리즈 우승 배당금으로 받는다. 그러면 두산의 배당금 총액은 27억원에 육박한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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