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영(맨 왼쪽부터), 최양준, 김순자씨가 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문 피해를 증언할 때 괴롭지 않냐는 질문에 하나 같이 “수십년간 내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하는데 간첩으로 몰려 제대로 울지도 말하지도 못했다”고 답했다. 이윤주기자

“신문사에서 우리 만나러 온다는 얘기 듣고 죄 지은 거처럼 가슴이 벌렁벌렁한 거예요. 그날도 누가 좀 보자고 해서 나갔다가 그렇게 된 거거든.”

최양준(80)씨가 상기된 얼굴로 말문을 연다. 최씨는 1982년 조총련간첩단 사건으로 이듬해 15년형을 선고 받아 8년여를 복역했고, 2010년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다. 1974년 울릉도간첩단 사건 피해자 이사영(81·2010년 재심 무죄)씨, 1979년 삼척간첩단 사건으로 온 가족이 누명을 쓴 김순자(74·2016년 재심 무죄)씨도 최씨와 똑같은 표정으로 할 말을 삼키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같은 피해를 겪은 강광보(79), 고 김태룡씨와 함께 31일부터 다음달 17일까지 민주인권기념관(옛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사진치유전 ‘나는 간첩이 아니다-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의 이야기’를 연다.

22일 서울 불광동 서울혁신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고문 받던 그 자리에 전시회를 연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김순자)고 말했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곳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간첩 누명을) 알게 될 걸 생각하면 좋아요. 사람들이 너무 몰라서 외로웠거든요.”

세 사람이 사진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 받게 된 건 2015년 무렵부터다. 조작간첩 피해자를 위한 비영리 인권단체 ‘지금 여기에’가 사진치유자인 임종진(50) ㈜공감아이 대표에게 강연을 의뢰하면서 네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임 대표는 “프로그램에서 카메라를 드는 목적은 사물을 마주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처의 공간, 기억과 마주하기 위한 도구로 렌즈가 쓰이죠. 동시에 카메라가 표현의 도구라서 찍고 바라본다는 행위 자체가 성취감을 줍니다.”

임 대표는 “어르신들의 공통점이 일상을 찍은 사진 중 TV화면이 굉장히 많았다는 것”이라며 “동물원, 초원, 외국 명소 같은 당신들이 못 가는 곳들을 담은 TV화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조작간첩 피해자들은 수감, 보호관찰로 수십 년을 억압받으며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고, 이런 억눌린 감정이 TV화면을 찍는 행위로 표현됐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프로그램 시작 후 반년 간 이들은 일상을 사진으로 찍고, 행복한 기억을 쌓을 공간을 함께 다녔다. 누명을 쓰지 않았다면 가졌을 원감정(인간이 누리는 기본적인 감정)을 회복하는 훈련이다. 김순자씨는 “서울에 살아도 먹고 살기 바빠 남산타워를 못 가봤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남산타워, 63빌딩을 가보고 한강유람선도 처음 타봤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아픈 마음을 쓰다듬어주니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김순자씨가 찍은 남영동 대공분실 계단. 첫 방문 때 카메라를 들지 못했던 김씨는 몇 번의 방문을 거쳐 렌즈에 계단 전체를 담았다. 공감아이 제공
옛 안기부 터에 자리잡은 서울 이문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지하에서 찍은 창문 사진. 이사영씨는 40여년 전 고문받던 안기부에서 본 풍경이 이와 같았다고 설명했다. 공감아이 제공
최양준씨가 북악산을 찍은 전경. 1980년대 서대문형무소 수감 당시 감옥 창문을 통해 바라본 북악산 풍경이 꼭 이 모습이었다. 이제는 직접 오를 수 있다. 공감아이 제공

이후 서대문형무소, 남영동 대공분실 등 ‘아픈 장소’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이사영씨는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가슴이 떨렸다. 여러 번 찾아가니 그런 마음이 없어졌고, 이제는 덤덤하다”고 전했다. 사업차 한국과 일본을 오갔던 이씨는 74년 겨울 이문동 안기부로 끌려가 일주일 간 고문 받고, 허위 자백해 15년형을 선고 받았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바뀐 건물 지하에서 바깥 풍경을 찍으며, 40여년 전 형무소 창문을 통해 바라보던 빛을 떠올렸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처음 찾던 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못했던 김순자씨(“나 뿐 아니라 아버지, 동생도 다 같이 고문 받은 기억, 그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지요”)는 사진 치유 프로그램 마지막 무렵, 서대문형무소 사출시설을 찍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아버지 김상회씨가 1983년 외롭게 생을 끝낸 곳이다. 5년형을 선고 받고 대전교도소에 복역하던 딸 김씨는 부모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1982년 부산보안대에 끌려가 한달 간 전기고문, 통닭구이, 손톱 밑 대바늘로 찔리기, 구타 등 온갖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을 했던 최양준씨는 고문 장소를 찍어보라는 주문에 수강생 중 가장 격렬히 반대했다. 최씨는 “두려움이 있었다. 대공분실이나 이문동처럼 건물이라도 남아있으면 했는데, 부산보안대는 그 사이 세 번이나 바뀌어 건물도 없었다”고 말했다. 병무청으로 바뀐 옛 부산 보안대를 찾아 사정을 말하고 허허벌판으로 바뀐 취조실 터를 찍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임 대표는 “부산을 다녀오신 후 다른 형무소들을 ‘휘젓고 다니시며’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임종진 대표는 “70,80년대 조작간첩 피해 사건은 구심체가 없고 전국에 흩어져있다. 억울했소를 반복해야 세상이 관심을 갖고, 늘 조명은 과거에 집중된다. 오늘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들의 기운으로 전시장의 암울한 기운을 덮어버릴 것”고 말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치유에 방점이 찍힌 전시회인 만큼 이들의 일상, 행복한 한 때를 담은 사진도 함께 선보인다. 행복을 찍어보라는 주문에 김순자씨는 손주들을, 이사영씨는 먼저 간 부인의 납골당을 찾은 자신의 거울 속 모습과 새로 만난 여자친구를 찍었다. “얼마 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던 이철 전 의원을 만났을 때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를 잊어버렸었다고. 그런 분도 잊고 사는데 다른 분들은 말할 것도 없죠. 나는 이 전시가 ‘사회에 대한 나의 고발이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나한테 얼마나 잘못했는가를 알리는 것이 소중해요.”(이사영)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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