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정부 시위 사흘째인 지난 3일, 수도 바그다드의 한 도로에서 시위대 두 명이 손을 마주 잡은 채 불타는 바리케이트 앞을 지나가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9.11 슈퍼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 이라크 전쟁(2003년), 아랍의 봄(2011년), 이슬람국가(IS)의 발호와 시리아로의 영토 확장(2014년 이후)으로 크게 고조됐던 중동의 분쟁은 마치 하향 국면에 들어선 듯했다. 지난 2014년 6월 29일 IS가 시리아와 이라크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시작된 이라크 내전도 IS의 경제 중심지이던 북부 모술을 이라크 정부군이 2017년 6월 29일 탈환하고, 7월 9일 공식 해방을 선언하면서 끝을 맺었다. IS 지배 3년 만이자, 이라크 정부군의 탈환 작전 9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중동 정세는 또다시 폭발하기 직전의 활화산처럼 달아오르고 있다. 주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가열됐고, 리비아와 아프간에서는 내전이 심화됐다. 이란 핵문제와 유조선 피격 사건을 둘러싸고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위기가 일상화됐고, 사우디아라비아 유전 지대 피격과 맞물리며 예멘 내전의 국제화도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또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지역에서의 미군 철수 발표와 그 이후 터키의 침공으로 비롯된 ‘시리아 쿠르드족 사태’까지 매우 많은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가 처음으로 시작됐던 지난 1일, 수도 바그다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바그다드 시민 여럿이 함께 부상을 입은 한 시위자를 이송하고 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이러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직간접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미국 우선(America First) 정책’과 관련돼있다. 그러나 이달 초 벌어진 이라크 내 반정부 시위는 ‘아직까지는’ 미국 우선 정책과 큰 관련이 없어 보인다. 이달 1일부터 일주일 간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을 주축으로 ‘부패 척결’ ‘일자리와 질 높은 공공서비스 제공’ ‘민생고 해결’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이라크 군경이 실탄을 발포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민간인 149명과 군경 8명 등 157명이 숨지고, 6,000명 이상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이라크 시위를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는 없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라크 정부의 ‘최대 자제’를 촉구했을 뿐이다. 다만 이번 시위 구호 중 부패 척결 주장에는 반미(反美)의 성격도 포함돼 있다. 2003년 이라크전 이후 미국이 도입한 분파 및 인종 그룹(시아파ㆍ수니파ㆍ쿠르드족 등) 쿼터제에 기반한 정부 구성이 결국 정치 지도자들의 부패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이라크 정부군은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게 점령당했던 북부 모술을 3년 만에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IS 점령 이전인 2014년 7월 온전한 상태의 모술 네비 유니스 사원의 모습(흰 선 밖)과 IS에 의해 파괴된 2017년 1월의 모습이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술=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이라크 사태가 우려되는 것은 시위와 이에 대한 과잉 진압이 확산 및 심화되어 지역주의와 연계된 이슬람 종파와 부족 간의 갈등 양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여기에 주변 관련국들이 개입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면, 최근의 시리아 쿠르드족 사태처럼 이라크에서도 ‘사건의 내전화, 내전의 국제화’가 재현될 수도 있다.

내부 혼란의 틈을 타서 IS와 알카에다 등 정치이슬람 그룹이 다시 확산될 수도 있다. 현재 중동에는 국경을 초월해 상호 연계된 크고 작은 ‘단층선’들이 여럿 형성돼 있으며, ‘국가 내 국가’ 현상이 잦다. ‘근대 국민국가 시스템’이 강고하게 자리 잡았다거나, ‘부족주의ㆍ이슬람 종파주의보다 공고한 국민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로 조그마한 충격에도 ‘정체성의 위기’ 상황, 즉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17년 7월 2일 이슬람국가(IS)의 이라크 내 최대 근거지이던 이라크 북부 모술의 올드시티에서 한 이라크 연방경찰이 현지 아이를 목마를 태우며 '모술 해방' 소식을 축하하고 있다. 모술=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게다가 중동에서 전쟁 수준의 분쟁은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10년 주기로 발생했지만, 9.11 이후부터는 3~4년으로 그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또 국가 간 전쟁뿐 아니라 특정 세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가와 테러 단체, 국가와 민족 그룹, 국가와 종파 그룹 간 분쟁 등 그 분쟁 양상도 복잡다단해지고 있다. 잦은 분쟁은 분쟁 당사자 서로에게 ‘집단적 복수심’을 강화시키고, 이로써 사태 해결은 더욱 난망해진다.

젊은 세대가 주도한 이번 이라크 시위와 정부의 잔인한 시위 진압은 세대 간, 빈부 간 사회적 갈등을 보여준다. 이런 사회적 갈등이 촉매제가 되어 종파ㆍ부족ㆍ지역 갈등과도 연계된다면 더 큰 분쟁으로 쉽게 발화할 수 있다. 실제로 아랍의 봄 시기였던 지난 2011년 이라크 반정부 시위 때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 해 2월 12일 시작된 이라크 시위로 ‘분노의 날(2월 25일)’ 하루 동안 숨진 21명을 포함해 총 35명이 숨졌다. 이라크는 2013년까지 시위와 테러로 얼룩졌고, 극도의 혼란 가운데 IS는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지난 1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한 반정부 시위자가 '이슬람국가'(IS) 격퇴전의 선봉에 섰던 압델 와합 알 사디 중장의 사진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아래에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줬기에, 우리도 당신을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씨가 써있다. 전쟁 영웅인 사디 중장이 조직 내 부패와 맞서싸우다가 좌천되면서, 민심은 더욱 들끓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청년실업 문제가 아랍의 봄의 기폭제가 됐던 것처럼, 올해 시위에서도 이 문제를 반영하는 ‘부패ㆍ일자리ㆍ질 낮은 공공 서비스’가 시위를 촉발했다. 여느 다른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특히 대학 졸업 청년들의 실업(2018년 기준 이라크 실업률 7.93%, 청년 실업률 16.56%)은 사회 불안정의 원인이 된다.

지난해 5월 총선으로 구성된 압델 압둘 마흐디 정부는 애초에 정권 출범부터 여러 난제에 직면하며 ‘과부하 위기’에 놓였었다. 마흐디 정부는 짧은 기간 내 정치 안정, 부패 척결, 경제 발전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역량도 부족하고 환경도 따라주지 않는 가운데 이번 사태를 맞았다. 특히, IS와 치열하게 싸웠던 전설적인 인물인 이라크 대테러특수부대(CTS)의 압델 와합 알 사디 중장이 부정부패와 조직 내 정치꾼들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좌천되자 이라크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끓어올랐다.

내전의 확산이 가져올 결과를 모두 알기 때문인지, 이라크의 종교ㆍ정치ㆍ지역 부족 지도자들도 개입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흐디 정부도 9일 시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개혁안을 내놓았고 3일간 사망자를 추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시아파 성직자 아야톨라 알리 알 시스타니는 보안군과 시위대 양측 모두에 폭력 사용 자제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부패 척결 실패와 유혈 진압으로 인한 시위자 사망 사건을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바르함 살리 이라크 대통령과 이라크 의회도 보안군의 시위대 공격을 비난했다.

이라크의 주요 도시에서 지난 1일부터 일주일 간 부정부패와 민생고에 항의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3일 수도 바그다드의 한 거리에 나선 청년 시위자가 두 팔을 뻗고 있다. 이라크 당국은 이날 시위 진압 과정에서 최루탄을 사용했으며, 공중을 향해 실탄 경고 사격을 했다. 바그다드=AP 연합뉴스

이번 시위 사태가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나 기존의 중동 분쟁 양상으로 보아 두 가지로 전망해 볼 수 있다. 만약 마흐디 정부가 약속한 대로 청년 실업 해소 방안, 부패 척결 방안 등을 제시하고, 종교지도자들이 종파 입장을 떠난 화해 협력 노력을 지속한다면 이라크는 안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마흐디 정부는 청년실업 해소 방안으로 이라크 진출 외국 기업의 직원 50% 이상을 이라크인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어느 특정 세력이 ‘불안정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것이다. 내전, 내전의 국제화, 불안정을 이용한 웹 3.0 시대의 새로운 테러 조직이 형성되거나, ‘IS 3.0’ 같은 정치이슬람 그룹이 확산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시리아에 주둔하던 미군을 이라크 서부 지역에 재배치하여 이라크를 수호하고 IS의 재발호를 막을 임무를 부과하겠다고 한다. 이미 5,000여명의 미군이 여전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시리아 주둔 미군까지 이라크에 추가 재배치된다면 이라크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인가, 안정화될 것인가.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라크의 혼란이 ‘폭발 직전의 고요함’인지 ‘안정화로 가는 길목’일지는 예단하기 어려워 보인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ㆍ2020년 한국중동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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