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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대학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입력
2019.10.26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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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기회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자, 그것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를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기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그곳에 쏟아야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나에게 기회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자, 그것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를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기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그곳에 쏟아야 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석사 학위를 받고 4년이 지난 지금, 박사 과정 진학을 위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졸업 이후 친구들은 유학길에 올랐고, 나는 돈을 벌었다. 책을 썼고, 취직을 했고, 학자금 대출도 갚았다. 다시 대학에 돌아갈 준비를 하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나에게 대학은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접근이 불가능한 곳이었고, 그 경제적 무게감을 극복하지 않으면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학비를 먼저 계산해야 했고, 실효성을 따져야 했다. 장학금은 없는지, 학자금 대출은 얼마나 받아야 하는지. 모든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강한 정신력이 있지 않으면 하지 않을 선택이다.

그 시기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고, 자녀가 고등학교 때 의학 논문 제1 저자로 등재된 것이 공개됐다. 당시 그는 논문 등재가 합법적이라고 말했다가 공분을 샀고,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절차가 합법적이라도 자원을 활용할 수 없었던 “흙수저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그가 ‘흙수저 청년’이라고 말할 때마다 마치 ‘너는 흙수저고, 내 자식은 금수저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뉴스를 볼 때마다 우울했다. 이를 비판하는 보수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온갖 자원을 동원해서 자녀의 조기 유학, 대기업 인턴, 취업을 돕는다. 어느 쪽이건 교육과 불평등 이슈를 ‘자기 문제’로 인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부모가 지닌 자원으로 자녀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주려는 것, 그것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원이 교육을 매개로 상속되고, 합법적이라는 명분으로 격차를 만들어낸다. 그 격차는 울타리를 치고, 계층 내 자원 재생산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기여한다. 그 효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리처드 리브스는 저서 ‘20 vs 80의 사회’에서 상위 20%에 속하는 중상류층이 ‘기회 사재기’ 메커니즘을 통해 자녀들이 계층 하향 이동으로 떨어지는 위험을 막아주는 ‘유리 바닥’을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또 이 기회는 교육 시장과 주택 시장에서 강하게 작동한다고 했다.

어떤 이의 부모는 ‘유리 바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내 부모는 없던 ‘유리 천장’을 만들어 준다. 공부보다 돈 버는 게 좋지 않겠냐. 그 정도 공부하면 되지 않았냐. 이제는 주변에서 뭐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생길 법도 한데 그게 잘 안 된다. 이런 말은 의지를 꺾고, 감정을 소모하게 하고, 상처를 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제 파악은 잘하는 나였다. 대학원에서는 사회 구조 안에서 나를 해석하는 훈련을 내내 해왔기에 자기 객관화도 어느 정도 된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과 경제적인 것 앞에서는 어려웠다. 그래서 부모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버스에서 내내 울었다.

나에게 기회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자, 그것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택지를 지워야 하는 것이었다. 여러 기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그곳에 쏟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겨우 하나의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욕망할 때 나는 주저하느라 긴 시간을 보내야 했고, 경제적 조건과 시간을 저울질하며 밤잠 설쳐야 했다. 때로 무력감에 포기한 적도 많다.

대학은 여전히 가장 좋은 교육 인프라를 갖춘 곳이다. 연구자가 되기 위한 사람들이 대학원에 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대학은 학력 사회와 학벌 사회를 지탱하고, 계층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곳이 맞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하고,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대학을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난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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