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메아리] 징용 판결 그 후 1년

입력
2019.10.25 18:00
26면
0 0

한일 총리 회담 불구 양국 인식 차 여전

배상 과정에 우리 정부 적극 개입 필요

양국 정상, 갈등에 안주하는 선택 말아야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역시나로 바뀐 만남이었다. 이낙연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24일 회담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가 얼어붙은 이후 사실상 첫 최고 지도자 간 회동이었다. 20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애초 계획된 10분 남짓보다 길어진 데다 양국 지도자 모두 한일 관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되며, 외교 당국 간 대화를 계속해 나가자는 데 공감한 것은 성과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도 여전히 징용 배상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 확인됐다.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이라는 국제법을 위반한 상황을 먼저 시정해야 한다는 아베 총리의 유행가 후렴 같은 발언은 정상 간 대화 필요성 등 협상 의지를 적극 표명한 이 총리와 대비돼 더 답답하기만 했다.

문제의 발단인 대법원 징용 판결이 30일로 1년을 맞는다. 징용 배상은 한일청구권협정의 정신에 따라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가해자인 일본 정부와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 구제 정책을 시행했던 사안이다. 협정을 준수하려 한 것이든, 이를 새롭게 해석했을 때 불거질 외교적 파장을 감안한 것이든 역대 우리 정부가 징용 피해 보상을 우리 책임으로 인정해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 “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수 없다. 개인의 인권 문제는 국가간 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국제법 해석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국가 간 협정을 포함해 어떤 법이든 다툼이 생길 수 있는 대목에서는 사법부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 해석이 기존 행정의 판단과 다를 경우 사법부의 최종 판단에 따르는 것이 법치의 기본 원리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런 법 해석이 그간의 해석과 배치될 뿐 아니라 심지어 국가 간에 상이할 때는 법의 권위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지난 1년 간의 한일 관계가 이를 증명한다.

양국 지도자가 주도하는 외교적 타협 외에는 묘수가 없다. 양쪽 모두 조금씩 양보해서 이해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 한일 모두 상대국의 기본 주장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일본은 배상 문제를 전적으로 한국이 알아서 해결하기를 고집한다. 한국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도록 일본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배상의 책임을 안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양보를 생각해 볼 수 있을까. 한국 정부로서는 아베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국제법 위반” 주장을 체면 구기지 않고 접을 수 있도록 배상 과정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한일 기업이 공동 출연하는 ‘1+1 재단’ 방식을 반복해서 제안했지만 일본이 요지부동으로 나오자 거기에 ‘α’를 더한 방식을 새롭게 거론하고 있다. 그 ‘α’는 한국 정부가 되어야 한다. 외형적으로는 한일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더라도 재정까지 포함해 재단의 원만한 운용을 정부가 보장하는 게 바람직하다. 동시에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이 이 같은 배상 과정에 자유 의사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은 물론 그런 움직임을 독려해야 한다. 이 같은 원칙에 합의한다면 상황 진척을 위해 대결 양상으로까지 이어진 대한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을 동시 철회해 신뢰의 단초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시나리오를 포함해 한일 대화가 앞으로도 원만하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일 모두 지금의 갈등이 불편할 뿐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압박은 우려만큼의 피해가 나오지 않았다. 한국의 일본상품 불매운동 역시 애초부터 큰 효과를 기대할 만한 것은 아니었고, 일본 관광 중단은 지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일본 전체가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 양국 지도자가 공히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 혜안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