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권익보호를 내세워왔던 국민권익위원회가 정작 산하 콜센터는 10년 넘게 외주업체를 통해 운영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한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왔다는 지적이다.
24일 권익위에 따르면 권익위는 위원회 산하에 ‘110정부민원안내’ 콜센터를 두고 있는데 이 센터직원 230여명은 외주업체 한국코퍼레이션 소속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120다산콜센터’를 비롯, 미래창조과학부,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들이 운영하는 콜센터는 모두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110콜센터는 2007년 5월 출범했다. 전화번호 하나로 정부 업무에 대한 문의를 해결해준다는 취지다. 현재 316개 정부기관과 연계가 되어 통합 민원 서비스를 제공한다. 110콜센터 직원들은 민원인과 관련 정부 부처 담당자를 연결해주는 역할부터 행정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안내하는 등의 대민 업무를 수행한다.
외주업체 소속이라 110콜센터 직원들은 연차와 상관없이 일괄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인 180여만원을 기본급으로 받는다. 매년 계약을 갱신하는 데 콜센터이기에 콜 수와 매달 치러지는 시험 성적 등에 따라 D~S등급으로 5만~25만원의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다. 시험은 110콜센터가 부처 통합 서비스 기관이다 보니, 민원에 대처하려면 담당 부처의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치러진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지만,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선 '공무원의 총알받이'란 탄식이 나온다. A씨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생리대 부실 조사 논란 당시 콜센터로 밀려오는 항의성 폭언 전화에 응대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졌다"며 "불친절하게 대응하면 시말서를 써야 해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부처에서 ‘처치곤란’ 민원을 떠넘기기도 한다. B씨는 “유공자 신청 문의가 있었는데 서류가 없어서 안된다고 하자 엄청난 욕설을 들었다”며 “담당 공무원은 ‘그런 건은 넘기지 말라’고 해서 민원인에게 죄송하단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실적 압박도 받는다. 다른 직원 C씨는 “행정 절차에 대한 민원이다 보니 종종 한 사람과 1시간 이상 통화하면서 안내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외주업체 직원이 ‘그렇게 질질 끌지 마라’고 지적한다”며 "보통 하루에 100개 정도의 콜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민원과 지적이 맞물리면 마음이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 공공기관 내 잘못된 노동 관행에 대해 비판하고 지적해야 할 권익위가 산하 콜센터 운영을 외주업체에게 맡기는 것은 ‘등잔 밑이 어두운 꼴’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제 권익위는 공공기관 내 갑질 근절을 내걸고 110 콜센터 내에 ‘모바일 채팅상담’을 운영하고 있다.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쉬는 시간에도 일했는데 이를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한 지방노동청 결정을 권익위가 뒤집기도 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그 동안 외주로 운영해왔던 110 콜센터 직원들을 직접 고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내부에서 타당성을 논의하고 있다”며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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