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北 명확한 의도 파악이 우선”… 남북교류 마지막 보루도 위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 지도하고 금강산에 설치된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정부는 23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한 배경과 의도를 파악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 위원장이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를 전제로 한 만큼, 최소한 남북 대화의 실마리는 생겼다며 긍정적 의미를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와 무관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경제’를 강조한 다음 날 대표적 경협 사업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발언이 나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위태로워진 상황이라는 평가를 부인하진 못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지시와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이) 향후 계획이 어떤지 명확히 분석하는 게 먼저”라며 “협의할 부분은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통일부도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된 것이기 때문에, 북측의 의도와 구체적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이 요청을 할 경우에 우리 국민의 재산권 보호, 남북합의 정신, 금강산관광 재개와 활성화 차원에서 언제든지 (북측과) 협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신중한 태도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남북 간 대화의 끊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관광시서설 철거를 위한 남북 협의가 막혀 있는 남북 간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느냐’는 물음에 “부인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8년 6월 소떼를 몰고 방북에 앞서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일각에선 현실적으로 북한이 북측 지역에 있는 남측 시설 철거를 일방적으로 강행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이 2010년 남측 자산을 몰수(정부 자산) 또는 동결(민간 자산)했을 때 역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특히 내부적으론 문재인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한반도 비핵화를 견인할 중요한 모멘텀으로 여겨왔다는 점에서 적잖게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지난 20년간 남북교류ㆍ협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금강산 관광이 이대로 공중분해 될 경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개성공단 재가동, 남북한 철도ㆍ도로 연결, 전면적 남북경협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평화경제 선순환 고리가 깨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 내에서 남북관계는 물론 북미 비핵화 대화까지 촉진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뚜렷한 돌파구도 찾지 못하는 상태에서 국론분열만 가속화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비춰 북미회담도 암울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암울하게 보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처럼 북한 비핵화를 위해 협의하고 협상 의지를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안다”며 “미국과 북한이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게감 있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문재인 대통령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23일 오후 청와대에서 정상회담 전 악수하고 있다. 펠리페 6세 국왕 내외는 문 대통령 초청으로 이날 국빈 방한했다. 연합뉴스

반면 문 대통령은 잇단 악재에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살리려 애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비무장지대(DMZ)가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처럼 평화의 길이 돼 세계인이 함께 걷게 되길 기대한다”며 북측에 거듭 손을 내밀었다. 펠리페 국왕에게는 “평화의 여정에 함께 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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