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대의 대남 의존 정책을 비판하며 금강산 남측 시설의 철거를 지시했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합의한 금강산관광 재개가 이행되지 않는 데 대한 강한 불만으로 해석된다. 북미 협상이 교착하고 대북 제재가 견고한 상황에서는 남북 교류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상징성이 큰 금강산 시설을 철거하겠다니 어이가 없다. 정부는 북한의 진의를 면밀히 파악해 이번 조치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게 해야 한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23일 김 위원장이 해금강호텔, 옥류관 등 남측이 건설한 금강산관광 시설들을 둘러본 뒤 “남측과 합의해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고 현대적인 봉사시설들을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금강산이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돼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못 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며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남북 정상이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우선 정상화가 지연되는 데 대해 수차례 불만을 표출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결과 강도가 다르다. 김 위원장이 극히 이례적으로 선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의 남북 협력정책을 비판한데다, 대미 협상 실무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대동한 채 남측과의 금강산관광 사업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금강산관광을 북중 협력사업으로 시행하겠다는 대미 압박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불만에 일부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한반도 정전 체제와 유엔 대북 제재를 감안하면 남북관계 개선에서 우리 정부의 독자행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도적 지원과 스포츠 교류 등을 중시하는 이유다. 그러나 북한은 쌀 지원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공동방역 제의를 잇따라 거절했고 최근 평양 월드컵 예선전도 ‘깜깜이’ 행사로 전락시켰다. 북한은 이번에 대남ㆍ대미 경고 효과의 극대화를 노렸겠지만 우리 국민의 피로도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북미 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의 선순환을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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