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양지로 나오는 누드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특성상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나라로 꼽힌다. 특히 유교문화 영향으로 미술 분야에 있어서 ‘누드’는 더욱 그렇다. 화가, 사진작가들이 그리거나 찍고, 그걸 자기들끼리 돌려보긴 했을지언정 그것들을 바깥, 공공의 장소에 내놓기는 쉽지 않았다. 전시회 개최를 위해선 당국의 허가가 필수지만 사회주의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허가가 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이 관대해지기 시작했다. 조각, 그림뿐만 아니라 보다 적나라한 누드사진 전시회도 심심치 않게 열린다. 지난 19일부터 호찌민 시내 미술협회에서 열리고 있는 누드작품 전시회장을 찾았다.
◇양지로 나오기 시작한 누드
평일 오후인데다 쏟아 부은 비 때문인지 안은 한산했다. ‘영혼의 돌(Hon Da)’이라는 주제로 102개의 수석(壽石) 위에 사진작가 타이 피엔의 누드사진을 입힌 작품들이 전시된 곳. 안내를 맡은 직원 응우옌 티 응옥(20)씨는 “베트남에서 누드 사진 전이 아주 드물지만, 돌에 사진을 인쇄한 것은 최초”라고 자랑했다. 수석들은 달랏으로 유명한 중부고원지대인 람동성 등 전국 각지에서 구한 것들로 색깔과 모양에 따라 적절한 누드 사진들이 출력됐다.
친구와 함께 찾은 도안 쩌엉(40ㆍ여)씨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듣고 왔다”며 “여자로서 여자의 몸을 봐도 정말 아름답다”고 했고, 옆에 있는 그의 친구 다 타오(38ㆍ여)씨도 “왜 이제서야 이런 전시회가 열리는지 모르겠다”며 반겼다. 전시회는 연령 제한 없이 모든 이에게 무료로 개방됐다.
특히 남성 관람객들은 큰 관심을 보였다. 작품 하나 하나에 상당한 시간을 쏟아가며 감상하는가 하면, 작품들을 휴대폰으로 담았다. 누드 작품 관람 사실이 멋쩍었는지 이런 저런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다. 직원 응옥씨는 “중학생들도 와서 시끌벅적 관람을 하고 갔다”며 “나이 드신 분들, 특히 남성 관람객들이 수줍음을 좀 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난 주말 전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140㎡ 남짓한 공간에 주말 이틀 동안 찾은 관람객 수는 1,200명 이상이다. 응옥은 “베트남에서 이렇게 붐빈 전시회는 지금까지 없었다. 전시회 후 상당수 작품의 갈 곳이 이미 정해졌다”며 “26일까지 열리는 전시기간 중 매진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작품 가격은 크기와 작가가 매긴 예술성에 따라 170만~3,000만동(약 8만5,000~150만원) 정도이다.
◇베트남 더 열리고 있다는 증거
베트남에서 누드사진이 이처럼 ‘밖’으로 나온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베트남 최초의 누드 작품전이 열린 게 2017년의 일이고, 그마저도 여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조각과 회화였다. 이번 전시회는 베트남 정부가 허가한 역대 세 번째 누드사진 전시회다. 전시회를 개최한 타이 피엔씨는 “작품이 거래되기 위해서는 전시회가 열려야 했지만, 그렇지 않아 판매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베트남 사회학 전공자인 이계선 하노이 탄롱대 교수는 “프랑스 영향을 받았기에 한국보다 개방적인 부분이 있다”면서도 “공개적인 장소에서 누드 전시회를 한다는 것은 그 만큼 베트남 사회가 더욱 개방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영향으로 예술 작품에 대한 욕구는 높았지만, 상당 기간 억눌렸다 최근 이처럼 전시회를 통해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되자 베트남 국민들의 호응도는 아주 높은 수준이다. 2017년 베트남 사상 첫 누드사진전에 이어 작년 6월 두 번째 누드사진 전시회까지 성료되자 같은 해 12월에는 온라인 전시회까지 개최됐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전시회로, 작품들은 모두 경매 방식으로 판매됐다.
화가 쩐 탄 깐씨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통제 탓에 지금까지 누드 전시회는 예술가 커뮤니티에서만 진행됐고, 그 때문에 수요를 일으키기 어려웠다. 이는 작가들의 작품활동 제약으로 작용했다”며 이번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만큼 작가들의 작품 활동은 보다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전시회 허가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전시담당 비 키엔 탄씨는 “전시회는 허가해도 과도한 노출 부분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그의 상관인 부엉 두이 비엔 부국장은 “누드사진 전시회를 지지하지만, 예술성과 외설의 경계가 매우 얇다”며 “같은 전시회라 하더라도 많은 것들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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