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상장사 중 75%가 배당정책 공시 기준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주 입장에서 의미 있는 배당정책 정보를 제공한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주주 권익 보호 차원에서 배당 기준과 방향에 대한 충실한 정보를 제공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23일 이런 내용을 담은 ‘국내 상장기업의 배당정책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170개가 올해 처음 의무공시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내 배당정책 관련 내용을 점검한 결과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12월 결산법인의 경우 5월까지)를 의무화하고, 보고서에 주주, 이사회, 감사 등 10개 영역에 대해 정해진 원칙에 맞춰 기술하도록 했다. 배당정책은 주총 소집통보 및 안건제공 일자, 기업설명회(IR) 개최 실적 등과 더불어 주주 영역에 포함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170개 기업 중 배당정책 관련 공시 원칙을 지키지 않은 곳이 128개(75%)에 달했다. 이들 기업 중 두산그룹 계열사, 금호타이어 등 상당수는 정관에 있는 배당 관련 조항을 단순히 옮겨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기업 정관에는 배당정책과 관련해 ‘영업기간에 배당할 수 있다’ 정도의 선언적 문구만 담겨 있어 당국이 정한 공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 또 일부 기업은 아예 ‘배당정책이 없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배당정책을 원칙에 맞춰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은 경우엔 그 사유를 밝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이 93개에 달했다. 나머지 35개 기업이 밝힌 사유도 ‘사업 특성 및 향후 투자계획상 배당이 불가능하다’(17개), ‘배당 가능한 이익이 없다’(11개), ‘재무구조 안정이 시급하다’(4개), ‘거시경제 환경이 불확실해 배당정책을 제시하기 어렵다’(2개) 등 모호한 내용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당정책을 공시한 42개 기업 중에서도 △향후 배당 기준 △배당금 기준 지표 △배당 방향성 등의 정보가 포함돼 주주가 보기에 ‘실효성’이 있다고 평가받은 곳은 24개뿐이었다. 지배구조 보고서의 수요자인 주주의 입장에서 유의미한 배당 관련 정보를 제공한 기업은 전체 공시대상 기업의 14%뿐인 셈이다.
이수원 KCGS 선임연구원은 “그간 국내 상장사들은 정기 감사보고서, IR자료 등으로 산발적으로 배당 정책을 공시해왔지만 구체적이지 못했다”며 “배당정책 공시 의무화는 주주들에게 기업 배당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주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우선 공시 원칙을 준수하는 기업 비율을 높이는 한편 공시 수준을 높여 주주들에게 필요한 구체적 정보를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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