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행정수반인 캐리 람(오른쪽) 행정장관이 지난 22일 일본 도쿄 왕궁에서 열린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식에 참석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홍콩의 행정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경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섯 달째 계속되고 있는 홍콩 민주화시위 진압 과정에서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람 장관을 경질시키고, 입맛에 맞는 새 친중파 리더를 세워 홍콩 상황을 직접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종 승인하면 람 장관의 잔여 임기 2년을 대행할 후임자가 내년 3월 전까지 결정될 전망이다. 중국은 매년 3월 연례행사로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ㆍ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를 개최하는데 이때 승인을 받아야 공산당과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교체된다.

가장 문제가 된 건 람 장관의 허술한 위기 관리 능력이다. 우선 그는 지난 6월 초 홍콩시위의 도화선이 된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을 무리하게 추진한 장본인이다. 지난달 4일 송환법 철회를 선언하며 뒤늦은 수습에 나섰고, 이날 입법회에서 법안 철회 절차가 마무리됐지만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람 장관이 지난 4일 계엄령에 준하는 긴급법을 발동, 또 한 번 불필요하게 시위대의 분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홍콩 정치경제 전문가인 사이먼 카트리지는 “람 장관이 사태 진정을 원했다면 지난 5개월간 벌어진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와 홍콩의 정치 발전방안 모색을 선언했어야 한다”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FT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홍콩시위를 지난 1997년 홍콩 반환 이래 중국 공산당에 대한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보고 있다. 오는 11월 홍콩 지방선거에서 친중파 진영이 참패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와 람 장관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식통은 “중국 정부에선 폭력시위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경질 시점을 미루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3월까지 시위가 잦아들지 않을 경우 경질 계획도 변동될 수 있다는 뜻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정치적 의도가 있는 헛소문”이라며 람 장관 교체설을 일단 부인했다.

유력 후임자로는 노먼 찬(陳德霖) 전 홍콩금융관리국(HKMA) 총재와 헨리 탕(唐英年) 전 정무사장(총리 격)이 거론된다. 중국 정부가 주요하게 보는 자격요건은 크게 두 가지다. 이미 신뢰를 잃은 현 행정부에 깊게 가담하지 않았으면서 ‘친중파’여야 한다는 것이다. 노먼 찬은 비교적 중립적인 기관으로 평가되는 HKMA에서 홍콩달러 환율을 고정시키는 ‘페그제’를 정착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섬유 재벌가 출신 헨리 탕은 2012년에도 중국 본토의 지지를 받아 행정장관에 입후보했지만 각종 스캔들로 낙마한 전력이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또 다른 친중파 행정장관으로의 교체가 홍콩 사태 진정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시위대의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에 역행하는 조치여서다. 국제전략 싱크탱크 로위연구소의 동남아시아 전문가 벤 블랜드는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람 장관이 경질되더라도 홍콩 시민들은 베이징이 지명한 새 행정장관을 정당한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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