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의식을 전후로 진행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마라톤 외교’가 23일 반환점을 돌았다. 이번 주 총 50여개국 축하사절과의 개별회담 중 즉위의식 당일인 전날까지 27개국 사절과 회담을 가졌다. 1990년 11월 아키히토(明仁) 일왕(현 상왕) 즉위의식은 당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열린 관계로 예상치 못한 국제 외교 무대가 마련됐지만, 이번에 일본 정부는 주변국과의 양자외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29년 전 아키히토 일왕 즉위의식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3개월 후에 열려 중동지역에서의 전쟁 위기가 절정에 이른 상황이었다. 사절단으로 참석했던 댄 퀘일 미국 부통령과 아나톨리 루캬노프 당시 소련 최고회의 의장 등을 중심으로 걸프 위기 대응 협의를 위한 다각적인 접촉이 이뤄졌고, 다국적군이 이라크 공습에 나선 것은 이듬해인 1991년 1월이었다.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던 강영훈 국무총리도 당시 미수교국이었던 중국의 우쉐첸(吳學謙) 부총리를 궁중만찬에서 만나 국교 정상화 등 양국관계 증진에 대해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양국 최고위급 인사 차원의 접촉은 처음이었다.
이번 즉위의식을 앞두고 터키의 시리아 북부지역 쿠르드족 공격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규모 유전시설이 드론에 의해 공격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즉위의식 참석을 취소했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참석도 일레인 차오 교통부 장관으로 대체되는 등 중동 정세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응 논의 등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에선 아베 총리의 개별회담 중 한국과 중국과의 회담에 주목하고 있다. 24일 이낙연 국무총리와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전달될 예정이다. 강제동원 배상판결을 둘러싼 양국의 입장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음에도 친서 외교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환경을 마련할 수 있을 지가 관전포인트다. 총리관저 주변에선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많다. 그러나 다음달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와 대법원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 움직임에 대한 우려로 관계 개선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이날 도쿄 아카사카(赤坂) 영빈관에서 왕치산(王岐山) 중국 국가 부주석과 개별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선 내년 봄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일본 국빈방문 등 지난해 10월 아베 총리의 방중 이후 본격화하고 있는 중일 협력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왕 부주석은 전날 아소 다로(麻生太郎) 일본 부총리 겸 재무장관과도 회담을 갖고 양국 간 경제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화춘잉(華春塋)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왕 부주석의 즉위의식 참석과 관련해 “미래의 중일관계가 점점 좋아지기를 기대한다”며 “중일 간 각 분야에서의 교류를 지원해 양국관계가 건전하고 정확한 궤도에 올라 계속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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