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KIKO)’ 사태 해결을 위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절차가 수개월간 지연된 끝에 조만간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그간 대법원 판결 등을 이유로 금감원의 조정 절차에 미온적이었지만, 최근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수세에 몰리면서 여론을 의식해 키코 사태에서도 전향적으로 배상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조만간 키코 사건의 분쟁조정위원회(이하 분조위)를 열기 위해 소속 위원들과 날짜를 협의하는 등 막바지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개최일이 조만간 공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윤석헌 금감원장은 국정감사를 받으며 “이르면 이달 내 분조위를 열 수 있다”고 밝혔다.
당초 올 6월 무렵 분쟁조정 절차가 개시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4개월 가까이 지체된 이유는 금감원이 은행권의 조정안 수용 가능성을 끌어 올리기 위해 사전 의견 조율에 공을 들였기 때문이다. 분조위 결정은 법적 강제력이 없는 탓에 당사자 중 일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에 금감원이 피해기업과 은행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맡았는데, 몇 달 전만 해도 은행들은 “대법원 판결에서 문제가 없다고 나왔기 때문에 분쟁조정 결과를 수용하면 배임이 된다”며 완강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정안이 나오면 이사회 안건에 올려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DLF 사태가 은행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은행이 DLF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불완전판매 정황이, 마찬가지로 불완전판매 여부가 쟁점인 키코 문제와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금은 은행이 큰 소리를 낼 상황이 아니다”라며 “분조위에서 배상비율이 20~30% 수준으로만 나와도 은행들의 수용 가능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분조위 절차를 밟고 있는 피해기업은 4곳(피해액 1,500억원)으로, 이들 기업에 대한 분조위 조정안은 다른 피해 기업들의 배상 과정에서 가이드라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키코 계약의 내용이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에 피해 기업은 일괄구제를 받을 수는 없고, 개별 건마다 금감원에 민원을 제기해야 한다.
피해 기업이 모두 70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모든 기업이 분조위를 거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때문에 금감원은 대표성 있는 4개 기업의 조정안을 기준 삼아 은행과 기업들의 개별 합의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4개 기업에 대한 분조위 결정을 은행이 수용한다는 전제에서, 나머지 기업들의 자율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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