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하던 중 야당 의석에서 “에이 말도 안 돼” “아니야, 아니야”라는 고함이 처음 터져 나온 것은 “1분위 계층 소득이 증가로 전환되고… 청년 고용률도 12년 만에 최고치를 보였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다음날 보수 언론은 시정연설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실었다. 요약하면 ‘세금을 동원해 지속 불가능한 눈속임용 가짜 일자리를 대량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 야당과 보수 언론은 작년 8월 일자리가 불과 3,000명 증가했던 ‘고용 쇼크’ 이후 정부가 나랏돈을 들여 초단기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거듭 비판해 왔다. 덩굴 뽑기, 농촌ㆍ해양 쓰레기 수거, 조류인플루엔자 예방용 철새 감시, 빈 강의실 불 끄기 등 “코미디 같은 일자리만 급조”하며 정부의 비상금인 예비비까지 동원한다고 꼬집는다. 그리고 이런 낭비에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이 숨어 있다고 비판한다.
□ 1845년 가을, 아일랜드에 감자 역병으로 대규모 기근이 발생하자 영국 정부가 구호정책 마련을 서둘렀다. 이에 당시 창간한 지 2년 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자비를 베푸는 것은 국가적 실수”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구호 행위가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고, 정부가 시장의 작동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성한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다수 지도층의 지지를 얻었고, 구호를 추진하던 내각은 붕괴했다. 그 결과 100만명의 아일랜드인이 굶어 죽는 동안 정부는 외면했다.
□ 우리 야당과 보수 언론이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을 비판하는 이론적 논거는 174년 전 이코노미스트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물론 작년 고용 쇼크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때 국가가 나서 저소득층과 실업률이 높은 청년 세대에게 단기 일자리나마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게다가 ‘저소득층일수록 소비성향’이 높다는 경제학의 상식으로 볼 때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은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지속적 일자리는 시장이 만들지만, 시장이 작동하지 않으면 정부가 보호막을 만들어야 한다. 덩굴 뽑기와 철새 감시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자리다. 다만 지속적이지는 않다. 그들에게 안정적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언급한 대로 “보수적 생각과 진보적 생각이 실용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는 없을까.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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