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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억원짜리 무등산 조형물, 72억원대 태권브이랜드, 300억원규모 이순신타워.
만화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소품이 아니다. 현실 속 얘기다. 현재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 중인 야심작이다. 명분은 대동소이하다. 관광 사업에 대한 부가가치 창출로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각 지역마다 내세운 특징적인 개연성도 그럴 듯 하다.
공통 분모는 더 있다. 우선 일반 서민 눈높이에선 벗어났다는 점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지자체 예산 낭비 지적 사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부문도 유사하다. 적지 않은 해당 지역 주민들의 우려 속에 강행 중이란 사실 또한 닮은 꼴이다.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재단에서 전남 장성 남면 방향의 광주톨게이트 상단에 가로 74m와 세로 8m 크기로 설치할 무등산 조형물도 걱정이다. 23일 착공해 내년 4월 준공 예정인 이 조형물에 투입될 예산은 31억원. 이 조형물은 서울에서 광주로 진입하는 방면에서 다양한 무등산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과 일부 학계에선 접근성 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가성비에 대한 근심도 깊다. 셀프카메라 촬영조차 어려운 공간에 놓인 이 조형물이 과연 ‘몸값’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느냐는 의심에서다. 오히려 이 조형물이 안전 운전의 방해물로 되지 않을까 염려할 판이다.
전북 무주군 또한 논란의 진원지다. 무주군의회는 최근 임시회에서 여론에 밀려 잠정 보류됐던 72억원 규모의 ‘태권브이랜드 조성 사업’의 재추진 요구와 함께 건의문을 채택했다. 지난달 황인홍 무주군수가 “여론수렴과 사업 효과 검증 과정이 면밀하지 못했다”면서 전면 재검토 방침을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태권도 경기장과 체험 및 수련 등이 가능한 군내 태권도원을 활용하겠다는 심산이지만 현지 반응은 싸늘하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무주군의 재정자립도(올해 예산 기준)는 17.97%로, 전국 243개 지자체 가운데 171위다. 지역 주민과 시민단체가 “예산 낭비와 환경 파괴를 야기한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선 배경이다.
남해안 지자체의 경우엔 ‘이순신 장군’을 각각 선봉으로 내세워 내전이라도 벌일 태세다. 신 해양 거점도시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경남 창원시는 진해에 200억원을 투입, 100m 높이의 200억원대 ‘이순신 장군 타워’를 2021년까지 건립할 방침이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랑은 인근 지역인 경남 통영시에서도 각별하다. 통영시는 남망산조각공원에 300억원대의 ‘이순신 장군 타워’ 건립을 위해 이미 올 초 기본 계획 타당성 검토 용역까지 발주한 상태다. 전남 광양시도 2017년말부터 매년 국고 건의 사업으로 ‘이순신 장군 호국 타워’ 조성 사업(500억원대)을 올릴 만큼, 적극적이다. 남해안 지자체 3곳이 ‘이순신 장군’을 수 백억원대로 모시겠다며 출혈 경쟁에 들어간 셈이다. 이미 경남지역 사적지와 초·중·고교 등에 자리한 300여개 이상의 이순신 장군 동상으로는 모자란 모양이다. 이외에도 지자체 예산 집행 실패 사례는 많다. 인적조차 드문 240억원 규모의 전남 구례군 지리산역사문화관(2019년 개관)이나 흉물로 변해버린 99억원대 전남 벌교 꼬막센터(2014년 준공) 등이 그렇다.
지자체의 눈 먼 예산 지적은 매년 반복된다. 이유는 뻔하다. 보여주기식 행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실효성 검토부터 허술하다. 지자체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의 감시는 한가하다. 지난해 초 발표한 지자체 예산 낭비 사례 공개는 올 연말께나 가능하단다. 그 사이, 지자체 예산은 계속해서 새어나가고 있는 데도 말이다. “돈이 어디서 썩어 납니까? 즈그덜 돈 같으면 그렇게 쓰겠냐고요?” 논란이 불거진 한 지자체 주민의 분통에 공감은 더해진다. 혈세는 서민들의 눈 높이와 동떨어진 지자체 전시 행정 비용이 아니다.
허재경 지역사회부 차장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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