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이 23일 과거 잘못된 수사관행과 결별하겠다며 ‘미래비전보고서’를 내놨다. 의례적으로 내놓는 개혁안이 아니다. 오랜 숙원 사업이었던 검ㆍ경 수사권 조정안이 국회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다. ‘경찰이 지나치게 비대화된다’거나 ‘경찰 수사를 완전히 믿긴 어려운 것 아니냐’는 반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선제적으로 내놓은 카드다. 130쪽이 넘는 이 보고서는 마지막 베팅이다.
보고서에도 이런 상황 인식이 드러나 있다. 수사권조정을 두고 국민들은 “권력분산을 위한 제도개혁”으로 받아들이지만 “부실수사 의혹 등이 누적될 경우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면 전환을 위해 경찰의 비리나 의혹을 언론에 부각시키는 여론전도 심화될 것”이라 예상하면서 “경찰로서는 위기이자 기회의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라 평가했다.
‘경찰수사를 새롭게 디자인 하다’라는 제목이 달린 이 보고서에는 △국민중심 수사 △균질화된 수사 △책임수사 △스마트수사라는 4대 추진전략 아래 80개 추진과제를 담았다. 보고서는 경찰의 자기반성부터 내세웠다. ‘경찰수사의 과거성찰’ 부분에서 △검거와 실적 중심의 업무처리 △친분에 의한 유착비리 등의 비판을 인정했다. 이어 “국민의 참여와 통제, 소통을 확대해 국민의 지지를 받겠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건 ‘수사배심제’ 도입이다. 올해 초 경찰 유착 의혹으로 떠들썩했던 ‘버닝썬 스캔들’같은 사건은 수사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겠다는 것이다. 각 지방청에 청장 직속 ‘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를 설치, 주요 사건 처리의 적정성도 시민 눈높이에서 확인토록 한다. 검찰 개혁 방안으로 거론됐던 무작위사건배당 시스템도 도입한다. 외압에 따른 사건 축소, 무마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얘기다.
‘영장심사권제’도 전 경찰서로 확대된다. 강제수사를 위한 영장 신청 때 수사와 법률 전문가들이 한번 더 거를 수 있도록 해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방지한다. 자기가 수사한 사건의 재판을 참관해볼 수 있는 ‘자기사건 공판참여제’도 도입한다. 수사가 적법하게 잘 진행됐는지 스스로 확인해보라는 의미다. 고소만 하면 상대를 피고소인으로 자동 입건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따져서 입건하는 방식으로 고소제도도 개편한다. 수사 관행을 점검,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의미다.
배심제, 무작위 배당 등은 검찰보다 한발 더 나간 내용이지만 아직은 선언 수준이다. 뒷받침할 구체적 내용은 다시 정리해서 내놓을 예정이다. 고소제도 개편만 해도 형사소송법이 개정돼야 하는 등 법 개정 사함도 많다. 경찰은 80개 과제를 단기, 중기, 장기로 구분해 추진하되 내년부터 가시적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승영 경찰청 수사기획과장은 “지난 21일 ‘경찰의 날’을 맞아 꽤 오랫동안 준비해온 개혁안”이라며 “국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경찰이 있는 만큼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 충실하게 준비,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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