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해밀턴이 지난 21일 새 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의 홍보를 위한 내한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언제나 그대로일 것 같았던 은막의 스타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낼 때,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새 영화 ‘터미네이터 : 다크 페이트’의 홍보를 위해 처음 한국을 찾았던 린다 해밀턴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해밀턴은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 시고니 위버와 더불어 할리우드 ‘여전사’ 계보의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는 배우다.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터미네이터’ 1·2편의 여주인공 ‘사라 코너’는 어찌 보면 성모 마리아의 흥미로운 변주처럼 느껴지는 캐릭터로, 1980년대 초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0여년간 보수적이고 마초적인 기운이 지배했던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시절의 미국에선 다소 이질적이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할리우드 ‘여전사’의 대명사인 ‘사라 코너’ 해밀턴과 ‘리플리’ 위버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점이다. 바로 ‘타이타닉’ ‘아바타’의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다.

린다 해밀턴(왼쪽)과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부부였던 시절의 모습이다. 한국일보DB

캐머런 감독은 해밀턴의 전 남편이면서 ‘터미네이터’ 1·2편을 연출했다. 또 위버를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에이리언’ 2편의 연출자이기도 했다.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은 두 명의 ‘여전사’가 한 감독에 의해 각각 탄생했거나 다듬어진 셈이다.

여기서 얘기가 잠깐 곁길로 샌다. 캐머런 감독과 잠깐이나마 한 이불을 덮었던 이들 대부분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전사 아니면 여걸이란 점이 재미있다. 두 번째 아내였던 게일 앤 허드는 지금도 활발히 활동중인 유명 제작자이고, 세 번째 아내인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블루 스틸’ ‘폭풍속으로’ ‘제로 다크 서티’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 중 비글로우 감독은 캐머런 감독과 갈라서고 나서인 지난 2010년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부문에서 ‘허트로커’로 ‘아바타’의 전 남편과 맞붙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런데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로 올라가기 전 캐머런 감독과 진한 포옹을 나눠 “역시 할리우드 사람들답다”는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본론으로 돌아와 해밀턴은 캐머런 감독과 이혼한 뒤 커리어의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시리즈로의 복귀가 몇 차례나 점쳐졌지만, 모두 소문으로 끝났다. 캐머런 감독과 결별하면서 시리즈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게 된 해밀턴이 출연 요청을 계속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그 사이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조금씩 망가져갔다. ‘간판’인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꾸준히 자리를 지켰지만, ‘사라 코너’ 해밀턴이 없는 후속편들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부터 이병헌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5편 ‘…제네시스’까지 대중과 평단의 반응 모두 시원치 않았다.

1991년 개봉됐던 ‘터미네이터 2’의 린다 해밀턴. 리샤오룽(이소룡)을 방불케 하는 근육질 몸매가 인상적이다. 한국일보DB

이번 ‘…다크 페이트’에서 캐머런 감독은 연출자가 아닌 제작자로 나섰다. 감독을 고르고 자신이 제작과 연출을 겸했던 1·2편에서 이어지는 줄거리의 원안을 제공하는 등 총지휘자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즈에 다시 오리지널리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전 부인이기에 앞서 ‘페르소나’나 다름없었던 해밀턴의 복귀가 절실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들이 작품으로 28년만에 재결합한 ‘…다크 페이트’의 개봉이 더욱 반갑다 예고편 속 짧은 분량이었지만, 선글라스를 낀 해밀턴이 은발을 휘날리며 등장하는 장면은 떠나갔던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골수팬들을 다시 불러들이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처럼 일로 만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며 멀어졌던 남녀가 환갑을 넘긴 나이에 다시 손잡고 결과물을 내놓았다. 결과물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꽤 근사하고 쿨하다.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1편을 만나기 직전 느꼈던 설렘과 두근거림이 35년만에 다시 느껴지는 이유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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