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일왕 인정론 견제 의도… 일왕 즉위식 후 왕위 계승 논의 본격화
일본 왕실은 22일 진행되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즉위의식에 앞서 행사에 참석하는 해외 왕족의 공항 영접을 하지 않았다. 영접에 나서야 할 성인 남성 왕족이 사실상 왕위계승 1순위인 후미히토(文仁ㆍ53) 왕세제뿐이기 때문이다.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즉위의식 당시엔 영접에 나선 성인 남성 왕족이 7명이었지만, 이번엔 일왕의 작은 아버지인 마사히토(正仁ㆍ83)는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고 후미히토의 아들 히사히토(悠仁ㆍ13) 왕자는 성인이 아니다. 일본 왕족의 감소와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남성 왕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본 정부는 2017년 6월 왕실전범특례법을 마련하면서 즉위의식이 끝난 이후 왕위 계승을 위한 논의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에 즉위의식 후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왕실전범에 규정된 남계(男系ㆍ부계) 남성의 왕위 계승 전통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현재 일본 왕실 구성원은 18명으로 왕위 계승 후보는 후미히토, 히사히토, 마사히토 3명뿐이다. 현 나루히토 일왕은 마사코(雅子) 왕비와의 사이에서 아이코(愛子ㆍ18) 공주만 두고 있다. 고령인 마사히토와 나루히토 일왕과 5살 차이인 후미히토 왕세제보다 히사히토 왕자가 가장 유력한 왕위 계승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여성 왕족은 일반인과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기 때문에 현재의 왕실전범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왕족 감소는 물론 공무 부담도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여성 일왕을 인정하거나 여성 왕족이 결혼한 후에도 왕족 신분을 유지하게 하는 여성 궁가(宮家) 창설 방안이 거론돼 왔지만 매번 결론 없이 흐지부지됐다.
이런 가운데 자민당 내 보수의원 모임인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즉위의식 다음날인 2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게 옛 왕족이었던 남성들을 왕족으로 복귀하는 방안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1일 전했다. 태평양전쟁 패전 이후인 1947년 미 군정의 지휘로 왕족 신분에서 벗어났던 남성들을 현재 왕족의 양자로 들이거나 현 여성 왕족의 배우자가 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이는 남계 남성 계승 전통을 고수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여성 일왕 인정 또는 여성 궁가 창설 논의를 견제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들은 “역대 여성 일왕이 8명이었지만 모두 남계 세습에 따라 남성으로 후임이 정해졌다”며 “한번도 없었던 여계(女系ㆍ모계) 일왕을 인정하면 ‘이질적인 왕조’, ‘일왕답지 않는 일왕’이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유럽 왕실에서도 여성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고 있고, 남계 남성만의 왕위 계승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남녀평등에도 어긋난 시대에 뒤처진 규정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