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선 후보군 10명 중 6명이 법률가
과거 지향 프레임으로 분열ㆍ갈등 주도
총선 D-6개월, 국민 역량 모을 인재 필요
대한민국은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핵심 요직을 법조인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10명 중 6명이 법률가 출신이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법조인 출신은 무려 50명. 다른 직역 종사자보다 수십 배나 많다. 이렇게 과잉 대표된 법조인들이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들이 판검사 출신 정치인에 대한 환상에서 속히 빠져 나와야 한다. 판사 출신인 여상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7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30년 군사정권과 민주화를 거치며 3명의 군인(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과 2명의 직업 정치인(YSㆍDJ)을 대통령으로 맞았다. 지금은 ‘법조 정치인’ 전성시대다. 군부와 정보기관이 힘을 잃은 틈을 비집고 검찰ㆍ사법 권력이 득세한 결과다. 이들은 법조 울타리를 넘어 국회ㆍ정부 요직을 장악하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50명이 판검사 등 법조인 출신이다.

‘3김 시대’가 저문 이후 대선 후보군의 주류는 법조인이었다. 이회창 노무현 이인제 문재인 홍준표 이정희 강지원 등이 대권에 도전했다. 당선자도 2명 나왔다. 차기 선호도 조사(한국갤럽, 10월 1~2일)에서도 황교안 이재명 홍준표 오세훈 박원순 등 법조인 5명이 10위권에 있다. 법학자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포함하면 6명이다.

우리 국민이 법조 정치인을 유독 선호하는 이유는 뭘까. 대한민국은 사회적 신뢰 인프라가 약한 나라다. 이 때문에 시스템보다는 사람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법조인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다. 사농공상의 유교문화와 학벌사회의 전통은 법조 정치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공부 잘하던 모범생이 법과 원칙을 잘 지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주리라는…. 이회창 전 대법관이 ‘원칙과 소신’ ‘대쪽 판사’ 이미지로 세 번이나 대권에 도전했던 배경이다.

민주주의 근간은 법에 의한 통치다.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가 법률가이고, 민의의 전당도 판검사 출신 천지다. 법과 원칙, 정의가 실현되는 나라여야 한다. 법률가의 지배는 역설적으로 법 과잉 사회를 만들었다. 검찰이 맘 먹고 달려들면 국민 모두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법이 정치 언론 기업 등의 도덕ㆍ자율 영역까지 침범해 들어오니 검찰ㆍ사법 권력은 갈수록 비대해진다.

현실과 유리된 법 만능 풍조에서 법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목소리 큰 놈, 돈 많은 놈, 힘센 놈이 무조건 이기는 구조다. 견제받지 않는 특권 의식의 발로인지 법치 훼손에 가장 앞장서는 게 법조 정치인이다. 국회법을 어긴 채 폭력과 난동을 부리고도 정당한 수사를 거부한다. 입으로는 법치를 외치면서 자기 진영에 불리한 판결을 했다고 판사를 공개 비난한다. 입법으로 가는 길목인 국회 법사위를 장악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법안에 무조건 반대한다.

법조인은 지나간 사건을 놓고 승패와 시비를 가리는 직업이다. 법을 해석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속성상 보수적이고 체제 유지적이며 과거 지향적이다. 진영 대결이 첨예한 정치 환경에선 나름 쓸모가 있다. 툭 하면 고소 고발에 법률 특위를 가동하고, 검찰이 국회 청문권을 멋대로 무시하는 세상 아닌가.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자기 확신이 강하고 고집도 세니 내로남불 싸움꾼으론 제격이다. 동료 의원을 ‘웃기고 앉았네, XX 같은 게’라고 비난한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롤 모델이다.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 속에 인구ㆍ산업 구조가 급변하고 있다. 기존 패러다임으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하다. 융복합 창의성 협업 등이 미래 생존의 핵심 키워드다. 외교학의 고전인 ‘외교론’의 저자 해럴드 니컬슨은 “법률가는 외교관으로서 최악의 부류에 속한다”고 했다. 외교란 ‘협상을 통해 국제관계를 관리해 나가는 예술’인데, 선악 이분법과 과거 지향적 프레임에 매몰된 법조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영역이라는 것이다. 정치는 외교 이상의 고차원적 예술이다. 협상을 통해 상대 정파를 관리하면서 국민 다수를 위한 정책을 끌어내야 한다. 선진국에서 판검사 출신 대통령이나 총리를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다.

내년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개혁 공천이다. 주류 및 세대 교체가 핵심이다. 어떤 정치인을 뽑을 것인가? 법조 정치인은 갈등구조를 확대 재생산하는 진영 대결의 주범이다. 과잉 대표된 법조인이 지배하는 국회를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열린 시각으로 미래를 통찰하는 통합ㆍ포용의 인재들로 새 판을 짜야 한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진영 싸움도 끝낼 수 있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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